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진 ‘막걸리’

 

막걸리
막걸리가 어느 날 갑자기 붐을 일으키면서 한국의 대표 ‘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 막걸리 업계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막걸리에 대해 많은 언론 매체가 이러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최근 막걸리의 열풍은 구체적 근거 자료가 없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밝히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전통주에 대한 관심, 유산균과 효모가 살아 있는 ‘웰빙 주(酒)’라는 인식, 와인 열풍에 따른 반발 등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막걸리의 이름은 ‘막 걸렀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빛깔이 희고 탁하다고 해서 ‘탁주’라고도 하고, 농주(農酒)·재주(滓酒)·회주(灰酒)라 불리기도 한다. 현재 전국에 퍼져있는 양조장은 780여 개, 생산되는 막걸리 종류는 2000여 종에 이른다. 막걸리는 한때 술 전체 소비량의 80%를 차지해 ‘국민주’로 불렸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정부는 1960년대 쌀 부족현상이 심해지면서 주원료였던 쌀로 빚는 막걸리를 금지시켰고, 대신 밀가루와 일본식 입국(立麴)이 사용돼 이전과 다른 탁주가 등장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다시 쌀로 빚는 막걸리를 허용하게 됐고, 탁주 판매의 지역제한이 2000년대 들어서 자율경쟁시대로 바뀌는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이런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치고 지금은 누구나 만들고, 어디든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울타리 속에서 사멸해 가던 막걸리가 시장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수출이 시작되면서 더 넓은 시장과 만났고, 결국 지금의 막걸리 붐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막걸리 붐이 앞으로 계속될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막걸리 붐, 이면에 문제점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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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대형 통(일명 ‘말통’)에 담긴 막걸리가 위생 검증이 되지 않은 채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현장이 고발됐다. 20ℓ짜리 말통에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제조자가 누군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유통기간은 언제까지인지 전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런 출처 불명의 말통뿐만 아니라 대형 주류회사에서 제조되는 유명 막걸리 대부분이 재료사용에 특히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쌀·밀을 사용하는 대신 중국산 등의 질 낮은 수입쌀을 사용하고,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 사카린, 스테비오사이드 등이 첨가돼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인공감미료는 몸에 흡수되지 않고 칼로리가 없어 다이어트 감미료로 꼽히지만 유전자 변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유해성 논란이 있는 성분이다. 또한 막걸리 세계화를 외치는 이 시점에 살펴봐야 할 점은, 인공감미료 사용이 허가되지 않은 국가가 많아 수출에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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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 표시조차 소홀한 것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은 인공감미료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식품 함유량이 적다는 이유로 안심하고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공감미료에 대한 위해성 및 식품의 표시사항을 잘 확인해 되도록 섭취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최근 막걸리 붐으로 수도권 일대에서 밀주 막걸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탈세는 물론 위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출처 불명의 막걸리뿐만 아니라 유명 상표를 모방한 짝퉁(?)막걸리 또한 난립하고 있는 것. 특히 이런 막걸리에는 제조시 몸에 해로운 첨가물이 들어가고,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불법으로 제조하는 막걸리는 비위생적으로 제조될 수가 있으며 주류에 첨가해서는 안 되는 사카린 등을 첨가해 불안전하다”며 “항아리나 주전자에 담긴 출처 불명의 막걸리는 가급적 드시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당부했다.

 

밀주 단속 이전에 법안 개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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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마신 다음 날 배앓이를 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1992년 유해성 논란으로 막걸리에 사카린을 쓰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밀주 제조자들에게는 어차피 불법으로 만드는 술,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있는 막걸리’만 만들면 된다는 식이다.

 

특히 이런 밀주의 경우 정상 막걸리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에 공급되는 반면 공급경로는 파악하기 힘든 탓에 제대로 된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재료와 제조과정의 투명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이마저 쉽지가 않다.

 

최근 막걸리 인기에 힘입어 ‘막걸리학교’를 만든 허시명씨는 “아스파탐 등의 인공감미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막걸리 본래 맛이 쌉쌀함이 크기 때문이다”며 “이 쌉싸름한 맛을 잡기 위해 인공 첨가제가 사용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급적 인공 첨가제를 넣지 않고 소비자의 입맛을 당기는 막걸리가 결국 시장에서 승리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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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분명한 용기에 담아 유통시키는 것은 법규상 탁주 유통 용량이 ‘2ℓ 미만’으로 제한됐기 때문에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꼭 이 법규를 고수해야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소주도 4ℓ짜리 담금주가 있고, 맥주도 5ℓ짜리 케그가 나오는 마당인데 막걸리만 그럴 수는 없는 법. 다만 출처와 내용물, 유통기간이 제대로 명시된 용기에 담아 유통시킨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현행법대로 2ℓ 이하 또는 주세법 시행령대로 예외조항에서만 대용량을 다루는 방법으로는 막걸리산업이 성장할 수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관계부처의 단속보다는 제도개선이 더욱 시급하다는 결론이다. 말통이 문제가 돼 단속하고 처벌한다 해서 사라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지켜온 하나의 대중문화라는 점이다.

 

허시명씨는 “밀주의 불법 유통을 개선하는 몫은 해당 업자와 정부의 몫이다”면서 “해당 업자들은 양심껏 위생적인 막걸리를 유통시켜야 하고, 정부는 주세관련 규제가 지금의 밀주 유통을 낳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맛·제조시설·디자인 등 고급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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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술 전문가의 체계적 육성과 제조공정의 표준화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 양조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다. 정부에서 나서서 대학이나 기타 교육기관에 양조학과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굵직한 술 제조회사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전국에 통틀어도 수십 명에 불과하다.

 

가장 좋은 제조법을 통일해서 품질관리에 편리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불어 가격과 내용면에서 다양한 술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외에도 제품 디자인 개선 등 외적인 면에서도 노력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막걸리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 개발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세금 걷을 생각만 했지 아무런 지원 뒷받침을 해주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막걸리 시장은 연간 25600억원대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피맛골 등 서민 주점에서 팔리던 것이 골프장, 관광호텔, 백화점 매장에서도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 8조원이 넘는 국내 술 시장 규모에서 탁주의 점유율은 3%에 그치고 있다.

 

업계 “막걸리 패키지 사업”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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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막걸리로 유명한 세왕주조의 송향주 이사는 “막걸리에 대한 고급화 인식 및 문화적 접근 차원에서 정부가 패키지 사업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 디자인, 유통, 맛, 제조시설 등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세청 소관업무로서 딱히 나설 수 없는 농림식품수산부나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식품의약안전청의 입장도 들어볼 만하다. 막걸리와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 중인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주세 관련 업무로만 막걸리를 세계화하고 국주로 자리메김하기엔 역부족”이라며 “막걸리에 대해 최고의 이슈가 돼 있는 이 시점에 타 부처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판부터 키우고 보자식의 구식 성장 모멘텀은 과감히 뿌리쳐야 할 숙제다. 아마추어 바둑 기사는 기껏 한두 수의 앞으로 내다보지만 프로 바둑 기사는 열 수 앞을 내다본다고 한다. 늘 지적돼 왔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더딘 방식은 얼마 전 ‘포천막걸리’ 상표가 일본에 빼앗기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막걸리학교의 회원 K씨는 “막걸리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양조산업의 인프라 구축, 발효식품으로서의 철저한 위생관리, 평가절하된 가격 체계의 보강, 음주 문화의 재조명 등 너무나 할 일이 많다”며 “행여 소홀한 틈에 한때의 붐으로 반짝하듯 지나가버리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덕산양조장의 이규행 대표는 “정부나 업계 관계자들에게만 ‘먼저 나서 봐라’ 외칠 게 아니라 대국민 관심과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현실은 정부, 업계, 소비자 등의 시너지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막걸리가 발효되듯 미미하게 부글부글 댈 뿐이다.

 

전통주 전문가들은 “막걸리의 명품화·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모두가 나서야 할 숙제”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최근의 막걸리 붐이 생계수단으로 장인정신을 가지고 술을 빚어오던 이들에게 장밋빛 희망으로 다가왔다가 흠칫 상처입고 멍들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조심스런 얘기를 전했다.

 

jepoo@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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