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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그리드 신중한 ‘허들’ 레이스 펼쳐라

【서울=환경일보】정종현 기자 = 저 멀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전 세계 대표들이 모여 지구온난화를 저지와 자국의 실리라는 성과를 동시에 얻기 위해 치열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한국 정부도 BAU 대비 30%라는 중장기 감축안을 설정하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참여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총회에서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든 한국 사회의 모든 인프라는 ‘저탄소화’라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미 변화의 중심에 있는 핵심 인프라가 있다. 바로 전력망이다. 각국의 정부는 몇 년 전부터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념도.

▲스마트 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이다.

 

전력망과 IT의 하모니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실제 사용량보다 10% 정도 많이 생산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전력의 최대소비량에 맞춰진 양으로 혹시라도 더 많이 사용할 경우에 대비해 전기를 미리 확보해 놓은 것이다. 연료는 물론 각종 발전설비도 추가적으로 필요하고, 버리는 전기 또한 많아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 또 석탄, 석유, 가스 등을 태우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도 늘어난다. 꼭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하거나 생산량에 맞춰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전기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지구온난화도 막을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스마트 그리드’다.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은 전력망에 IT 기술을 합쳐 소비자와 전력회사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소비자는 전기요금이 쌀 때 전기를 쓸 수 있고, 전자제품이 자동으로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작동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력생산자 입장에서는 전력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전력공급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전력 사용이 적은 시간대에 최대전력량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므로 버리는 전기를 줄일 수 있고, 전기를 저장했다가 전력 사용이 많은 시간대에 공급하는 탄력적인 운영도 가능하다. 또 과부하로 인한 전력망의 고장도 예방할 수 있다.

 

노후 전력망 개선과 CO₂감축, 일거양득

그러나 스마트 그리드가 진짜로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력망은 100년 전에 만들어진 전력망이다. 130년 전 에디슨과 테슬러 이후의 전력망이 그대로 유지돼 온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전력보급이 늦은 탓에 조금이나마 덜 노후화된 전력망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전력망의 노후화라는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큰 문제로 자리 잡아 개인적·국가적인 손실을 점점 더 심화시킨다.

 

전력망이 노후화되면 그만큼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고, 필요한 전력량은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는 교체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시기에 새로운 배전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효율적인 선택이다.

 

스마트 그리드를 도입하게 되면 자체 전력 생산도 가능해진다. 스마트 그리드의 하부에는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가 존재한다. 마이크로 그리드란,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소규모 네트워크를 말한다. 아파트라면 단지별로, 마을이라면 마을별로 전력을 생산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이크로 그리드는 송전 손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발전소의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1/3은 발전소의 전력생산에서 배출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온실가스감축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린카’로 떠오르고 있는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스마트 그리드가 필수적이다. 스마트 그리드가 충전 인프라 구축에 핵심이기 때문이다.

 

스마트미터.

▲스마트미터. 시간대별 사용량을 측정해 그 정보를 송신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 시간대별 요금을 알 수 있는 전자식 전력

량계를 말한다. 기존 전력 미터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LCD 디

스플레이를 이용하며, 전력 사용량 실시간 체크와 전력공급자와

사용자 간 양방향 통신 등이 가능해 전력 공급자와 사용자가

검침비용 및 에너지 절약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030년 한국은 스마트 그리드가 대세

이처럼 스마트 그리드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차세대 전력망으로 구축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2004년부터 산학연 기관과 전문가들을 통해 기초기술을 개발해왔으며, 2008년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의 과제로 스마트 그리드를 선정하고 법적ㆍ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능형전력망구축위원회’를 신설했다.

 

2009년 6월에는 가전제품과 네트워킹을 통해 전력사용을 최적화하고 소비자에게 실시간 전기요금 정보를 제공하는 전력관리장치 ‘어드밴스트 스마트 미터(Advanced Smart Meter)’와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 분산형 전원, 실시간 전기요금제, 전력망의 자기치유 기능, 신재생에너지 제어 기능, 직류(DC) 전원 공급, 전력 품질 선택 등을 필수요소로 하는 ‘한국형 스마트 그리드 비전’을 발표했다. 또 제주특별자치도를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로 선정하고,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 실증에 착수한 뒤 2011년부터 시범도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보급을 시작하며, 2020년까지 소비자 측 지능화를, 2030년까지 전체 전력망 지능화를 완료할 계획이다.

 

세계는 스마트 그리드 레이스 중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는 2004년부터 시작됐지만 미국은 이미 전력연구소(EPRI)를 중심으로 2000년 초반부터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EPRI는 2001년 CEIDS(Consortium for Electric Infrastructure in a Digital Society)를 구성하고, 전력망과 IT를 접목한 ‘IntelliGrid’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07년 말에 소위 스마트 그리드 법안으로 알려진 ‘Energy Independence and Security Act 2007(EISA)’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됐다.

 

지난 10월 말 미국 에너지부는 경기부양예산에서 34억 달러를 100개의 스마트 그리드 프로젝트에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에 대해 공공과 민간 투자를 합하면 미국은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81억 달러를 투자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도 내년부터 차세대 송전망인 ‘스마트 그리드’의 실증 실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낙도에서 관민 공동으로 대규모 실증 실험 등을 통해 일본 국내의 전력 계통에 도입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검증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태양광 발전을 비롯한 신에너지가 대량으로 도입되는 것을 대비해 전력의 안정공급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태양광 발전 등을 염두에 두고 잉여 전력과 주파수 대책, 축전지 제어 등을 일체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력 계통의 안정화와 효율화를 도모할 수 있다. 정부는 향후 전력회사 등과 협력해 낙도에서의 대규모 실증실험의 시행을 검토할 예정이다.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실증에서 효과가 확인되면 본토에서의 적용 가능성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스마트 그리드가 본격 도입되면 전력 설비 투자가 대폭 향상되기 때문에 정부는 내수 자극, 고용창출 등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비교적 후발 주자에 속하는 중국 역시 지난 6월 스마트 그리드 건설을 위한 10년 프로젝트의 시작을 선언했다. 이 프로젝트는 디지털 시대의 송전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강화하며, 에너지보존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됐다.

 

이어 올해 5월 중국국가전망공사(中國國家電網公司)는 중국 최초로 ‘스마트 그리드 종합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스마트 그리드 건설은 ▷2010년 내 발전 계획 수립 완료, 핵심 기술 및 설비 연구 개발과 시범사업 완수(5500억 위안) ▷2015년 내 핵심기술과 설비의 광범위한 응용(2조 위안) ▷2020년 내 전체 전력망 지능화 완성(1조7000억 위안)의 세 단계로 진행되며 총 투자액은 4조 위안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과 스마트 그리드 표준화와 관련한 공조체계를 긴밀히 형성하면서 표준화 분야의 선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안ㆍ표준화ㆍ경제성 확보 방안 시급

그렇지만 스마트 그리드 사업이 온통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스마트 그리드 사업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만큼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에 대한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표삼수 KT사장은 “스마트 그리드가 성공하려면 전체 에너지 네트워크의 보안기능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표 사장의 말처럼 보안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개인 정보 유출의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최고의 장비로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미국에서조차, 스마트 그리드 보안 문제는 아직 크게 대두되지 않아 몇몇 보안 전문가만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보안 컨설팅 업체인 IO 액티브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기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500달러짜리 장비만 있으면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에 침입할 수 있다. 게다가 한 개의 장비를 해킹하면 다른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 전체를 조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소비 출력을 무작위로 높이거나 줄이는 것은 물론 정전도 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광범위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경고했다.

 

두 번째로 기술표준화가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스마트 그리드 기술표준의 첫 번째 버전이 2010년까지 완료될 계획이다. 기술표준에서 상호운영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과제는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미국 국립과학기술원(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NIST)은 지적했다. 스마트 그리드 한 분 안에는 사이버보안에서부터 플러그인 자동차 통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수백 종류의 표준이 존재한다. 기존에 이외같이 대규모의 표준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없으며, 인터넷보다 더욱 복잡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스마트 그리드 표준화 작업은 시급히 이뤄져야 할 문제다. 전력업체와 소비자 간의 에너지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해 사업자들이 우선 자신들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 부문 네트워킹의 이러한 상황은 수많은 기술 제공업체, 전력사업자, 규제자, 표준화 기구 사이에서 전개되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세 번째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김문덕 한국전력 부사장은 “현재 전력 판매량의 70%를 점유하는 고객은 전체 고객의 0.1% 정도에 불과하다. 즉, 전력사용량 100㎾/h 미만의 고객에게 비싼 쌍방향 망을 설치해 주는 게 경제성이 있겠느냐도 쟁점 사항”이라고 말한다. 전력 사용량이 적은 고객에게 비싼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드는 비용을 회수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여기에 투자할만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같은 지역 전력회사인 PG&E를 대상으로 스마트계량기가 자신의 전기요금을 세 배로 올렸다고 소송을 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그 지역의 다른 거주자들 역시 요금 차이를 놓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스마트계량기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소송은 스마트계량기 보급 차원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플로레스가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거나, 계량기의 부정확성 또는 가격 인상 등의 단어가 새어 나갈 때에는 다른 고객들이 스마트계량기 설치를 거부할 수 있고, 미국의 현 스마트계량기 보급추진사업이 크게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대안 없는 한국 정부

하지만 한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 어디에서도 이와 관련한 대응책은 나와있지 않다.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는 “스마트 그리드 도입과 관련한 이런 문제점들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확실한 대책은 나와있지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 그리드 로드맵’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응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력산업과는 “보안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국정원, 국가보안기술연구소와 함께 보안분과에서 대안을 모색 중이며, 표준화 작업은 기술표준원 주도로 추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경제성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당장 전국에 원격검침시스템(AMI; 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에너지 세제에 탄소세나 환경세가 반영될 경우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단언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스마트 그리드 로드맵’은 현재 2차 의견수렴 과정에 있으며 연내 확정ㆍ발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어떤 비전과 대안을 가지고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추진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법개정을 통해 2011년 전기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게 하겠다고 선언한 정부가 연내 발표한 스마트 그리드 로드맵으로 어떻게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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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스마트 그리드 로고

 

리스크는 줄이고 사업성을 높이고

지난 10월 미국의 리서치 전문 회사 파이크 리서치(Pike Research)사는 2010년과 2015년 사이 스마트 그리드 시장 규모가 2100억 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아시아의 스마트 그리드 시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스마트 그리드가 국내 핵심 인프라의 저탄소화를 달성할 뿐만이 아니라 해외진출도 모색 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사업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지난 7월 한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스마트 그리드 선도국으로 지정돼 더욱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천길 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처럼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없다면 기회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올 연말 정부가 어떤 내용을 담은 ‘스마트 그리드 로드맵’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miss0407@hkbs.co.kr

정종현  miss0407@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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