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정원사, ‘인간꿀벌’이 되다

 

에코북
5월의 어느날 오후,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사과나무 옆에서 씨감자를 심던 폴란은 문득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원에 파종할 씨앗을 선택하고 식물을 가꾸는 행위가 마치 절대 권력인 것처럼 여기지만 인간들이 정원에서 하는 일이 꿀벌의 역할과 무엇이 다른가? 한 식물 개체의 유전자를 퍼뜨려준다는 의미에서, 자신은 ‘인간꿀벌’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 그러자 정원이 갑자기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늘 욕망의 객체로만 생각했던 식물들이 사실은 자신을 이용해 그들이 직접 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대신 수행하게 만드는 주체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던 것이다. 식물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저서 ‘욕망하는 식물’은 바로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식물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사람과 식물의 공진화 역사

 

다윈은 ‘종의 기원’ 1장 전체를 할애해 자연선택의 특이한 사례로 인위선택의 경우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연은 인간의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공간이 됐다. 좋든 싫든 자연은 ‘길들이기’라는 인간들의 문명화 과정에 편입됐고, 무한히 확장된 인위선택의 정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물들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탐구했다.

이 책 ‘욕망하는 식물’은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를 통해 식물과 인간의 기나긴 공진화 역사를 추적한다. 식물의 시선으로 인간 세계를 조망하는 이 책은 인간이 식물을 통제하고 있다는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동시에 식물과 인간이 서로의 욕망에 의해 얼마나 깊숙하고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사과, 튤립, 대마초와 감자를 단순히 ‘길들여진’ 식물의 대표주자로 여기지만 사실 이들은 그 어떤 식물 종보다 능동적으로 인간을 이용해왔다. 네 식물들은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신 생존과 번성을 보장받고 그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얼마나 영리하고 교묘한 전략인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들의 치밀한 생존전략과 유전자 속에는 인간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온갖 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폴란은 인간이 가진 달콤함, 아름다움, 도취, 지배의 욕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네 식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폴란이 이 책의 씨를 뿌렸던 5월로부터 석 달이 지나자 곧게 뻗은 이랑과 애초의 설계들은 그의 정원에서 사라졌다. 질서를 관장했던 아폴로는 떠나고 이제 정원은 그야말로 ‘녹색의 쑥대밭’이 됐지만 사실 모든 것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는 무질서하고 야생의 아우성으로 가득한 정원에 대해 조바심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정원에 맡기고 그저 싱싱하고 풍성한 수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제네바 과수원에서 가져온 야생 사과 씨가 자라면 꿀벌이 그가 기르고 있던 ‘볼드윈’의 유전자와 부지런히 섞어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사과를 선보일 것이며, 정원 한 켠을 차지한 검은 튤립 ‘퀸 오브 나이트’는 내년에 어떤 빛깔과 형태의 꽃을 터뜨릴지 예측할 수 없다. 스스로 살충성분을 생산한다는 유전자 조작 감자가 아니어도 까만 흙은 버터처럼 노란 속살의 감자를 아낌없이 내놓을 것이고, 온갖 꽃과 식물들이 보내는 유혹의 향기에 도취된 디오니소스는 그의 정원에서 축제를 벌일 것이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번역돼 읽히고 있으며, 출간된 지 7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책은 사실 2002년 초 한국에서도 ‘욕망의 식물학’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몇몇 눈 밝은 독자들이 찾아 읽고 열심히 추천할 무렵 이 책은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그래서 황소자리에서는 이 책을 다시 살리기로 하고, 새롭게 번역해 ‘욕망하는 식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

 

*저자 소개

 

지은이: 마이클 폴란

 

현재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로 나만의 자리, 뉴욕 타임스, 욕망하는 식물, 제2의 자연,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 출간하는 책마다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자유분방하면서 치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폴란의 글에 대해 미국 언론들의 찬사가 그칠 줄 모르며 학계와 관련 단체 역시 그가 내놓는 인간과 자연, 환경과 역사에 관한 새로운 해석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환경 관련 칼럼을 연재하는 한편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