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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

[환경일보 김종일 기자] 사회의 그늘인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봉사하며 지속가능사회 구현에 노력하고 있는 최일도 목사를 만나 보았다.

 

순수한 자원봉사 활동만 소중히 생각해

찬성·반대 요구하는 곳엔 ‘사랑’ 없어

지속가능사회는 작은 자, 소외된 자를 높이는 곳  

 

Q. 다일공동체의 생활 원칙이 있다면.

 

A. 1층에 ‘우리 봉사회 정신’에 대해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라고 붙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실천하고 있다.

 

Q. 담임 목사를 그만두셨는데.

 

A. 사회봉사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교회 공동체가 커졌는데 혼자서 목회와 봉사를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배에게 목회활동을 맡기고 사회 봉사활동과 영성 수련에만 전념하고 싶어서 담임목사직을 일찍 그만두게 됐다. 

 

Q. 성경적인 녹색성장은 가능한가.

 

A. 정치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다일공동체의 봉사활동이 여와 야 모두를 다 품으려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여와 야의 권력자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한다. “왜 그 분들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일체 공직·권력자와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예를 들어 말해 본다면, “대운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군가 물어올 때 찬반 양쪽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직 정치에 무관한 순수한 자원 봉사 활동만 소중하게 껴안고 싶다. 그래서 여도 야도 다 끌어다 주고, 대통령까지 다 품어 안으려 한다. 그런 이유로 찬반양론으로 갈려지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가 없다.

 

찬반양론으로 나뉘는 주제는 기득권 세력이 만든 담론이다. 찬성과 반대를 강요하는 정치담론은 사랑의 실천이 없다. 종교나 비종교나 천주교나 가톨릭이나 불교나 무신론자거나 종교가 없거나 사랑의 실천은 똑같다.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이 되는 참사랑만 따라 가겠다.

 

Q. 종교인에겐 예언자적 기능도 있는데.

 

A. 나에 대해 ‘사회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많이 내는 목사’라는 소문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도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대형교회에 대해 책망하고, 그렇게 예언자 역할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언자적 사명이 내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나는 사회의 소수자·약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들이 인간답게 인간의 존엄을 지켰으면 좋겠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봉사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Q. 밥퍼 운동이 지속 가능사회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나.

 

A. 생각하신대로. (웃음) 밥퍼운동은 우리가 안하면 반드시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곁에 가난한 이웃은 항상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이 있다. 파리에도 런던에도 뉴욕에도 L.A.에도 전 세계에도 약자들이 있을 것이다. 할렘 가에 그런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고층 빌딩이 높이 올라갈수록 그림자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너희 주변에 늘 소외 계층이 있다. 지극히 작은 자라고 불리는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이런 소외계층이 있다. 이들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에게 하는 것이고 이들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주님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께 따로 하고 이들에게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사회의 병들고 소외된 자들이 곧 나”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 소외된 자에게 봉사하는 것이 곧 주님께 봉사하는 것이라는 것이라 믿는다. 별개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하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급진적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야말로 급진적인 분이다. 예수님은 지킬 것을 지켰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급진적이었다. 예수님처럼 하면 되지 말이 많은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Q.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영성 수련 방법이 있다면.

 

A. 균형 잡힌 영성에 있어서 균형은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말한다. 기도가 노동이고 노동이 기도다. 여기서 우리의 이러한 봉사활동이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다. 산속에서 홀로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만 기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묵상 관상 기도가 있다. 노동과 기도 양쪽이 통전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을 다일공동체가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귀하게 쓰시는 것 같다. 어느 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수직적 영성과 수평적 영성,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 사랑의 실천의 종합이다. 예언자적 영성, 제사장적 영성 이런 것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문제다. 예언자들은 제사장들을 판단하고 예언자들은 제사장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 갈등 구조가 아니라 하나가 돼야 한다.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가져오는 길은 보수 진보로 나뉘어서 안 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가야 한다. 그래서 다양성 안에 일치다. 다일 공동체의 ‘다일’이란 이름은 ‘다양성 안에 일치’를 줄여서 만든 표현이다. 
‘diversity in unity, unity in diversity’가 교회에서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에 따라서는 이러한 영성 수련이 지속가능사회를 이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itdoc@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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