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영애 기자]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변에 위치한 청계천문화관에서는 오는 23일부터 5월23일까지 ‘서울 대중가요-서울을 노래하다’ 특별전을 개최한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을 노래한 대중가요를 정리해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본격적으로 대중가요를 주제로 한 최초의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대 히트곡은 물론, 시적 여운이 넘치며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가사와 훌륭한 작곡솜씨가 어우러진 음악적 수준이 높은 노래와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역사성을 가진 소중한 노래들도 함께 소개된다. 그리고 ‘서울을 노래한 가수’ 710명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는 코너도 마련했다.

 

서울의 지붕밑, 송민도 순애보, 1950, 킹스타레코드.
▲서울의 지붕밑, 송민도 순애보, 1950, 킹스타레코드
1960년대 이전-서울 대중음악의 시작

 

‘서울’과 관련된 가장 이른 가요는 1908년 발표된 창가 형식의 ‘경부철도가’, 1929년 랑소희의 ‘서울마치’를 들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종로·한강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광복이후에는 해방의 감격을 표현한 현인의 ‘럭키서울’, 장세정의 ‘울어라 은방울’ 등이 만들어지고, 1950년대 들어서면 서울가요의 배경이 명동, 소공동, 광화문 등으로 다양해지고, 음악감상실, 극장쇼 무대가 등장한다.

 

1960년대-극장과 다방 등 문화공간의 대중화

 

단성사, 대한극장, 아세아극장 등 극장 쇼의 전성시대로 명동 인근은 젊은이들의 중심지로 록과 포크 가수들의 근거지가 됐다. 당시 유명한 음악다방으로 ‘쎄시봉’, ‘오비스케빈’, ‘포시즌스’, ‘미도파싸롱’ 등이 있었고, 여러 호텔에 나이트클럽 무대와 고고장이 생겨났다.

 

또한 TV 방송들이 생겨나고 본격적인 LP 시대가 개막돼 지구, 오아시스, 유니버살, 신세기, 미미, 아세아, 럭키, 오리엔탈레코드사가 생겼으며 미8군 클럽이 활성화되면서 한명숙, 현미, 최희준, 패티김, 이금희, 위키리 등의 가수들이 인기를 끌었다.

 

김매자, 한강교, 1979, 오아시스레코드.
▲김매자, 한강교, 1979, 오아시스레코드
1970년대-록과 포크의 유행, 음악다방의 전성기

 

포크와 록, 고고, 디스코가 유행했으나 트로트가 주류였다. 이 시대 새롭게 등장한 지역으로 청량리 등이 있긴 했지만 명동은 여전히 서울가요의 중심이었다. 명동 YMCA의 ‘청개구리 홀’, 여성회관의 ‘해바라기’가 청소년들 사이에 유명했고 음악다방도 성행했다. 록음악은 1960년대 초에 미8군에서 도입돼 1970년대 말부터 본격화됐다.

 

1980년대-클럽, 소극장 등 대중문화의 저변 확대

 

종로와 광화문,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분식집에서도 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즐길 정도로 한국 가요는 대중화됐다. 시청 앞에는 합창, 노래, 춤 경연대회를 하는 ‘코러스’ 같은 신종 클럽도 등장했으며 종로 파고다 극장, 이태원 록 월드, 대학로 소극장 등에서도 록 밴드들이 활동하는 새로운 공연문화가 펼쳐졌다.

 

한편 서울노래는 ‘신사동 그 사람’, ‘밤 깊은 서초동’ 등 강남과 관련되거나 ‘59년 왕십리’, ‘내 고향 삼선교’등 강북과 관련된 흐름이 생겨나기도 했다. 또한 서울 시스터즈와 서울 훼미리와 같은 그룹 이름도 생겨났다.

 

1990년대-다양성의 시대, 댄스와 발라드의 유행

 

지구레코드, SKC, 오아시스, 성음, 서울음반이 중심이 돼 CD를 생산했다. 1990년대 초 노래방이 등장했고 10대들이 선호하는 댄스, 힙합, 랩 등과 20대들이 선호하는 발라드, 록 등이 유행했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2년작 ‘난 알아요’ 발표를 계기로 사회 전체에 신세대 문화가 확산됐고 댄스음악이 주류가 됐다.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 클럽밴드들도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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