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눈가리고 아웅’식 석면대책

제조부터 폐기까지 수많은 피해 확산

 

최예용 위원장2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한민국에는 거의 매달 석면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서울고등학교에서의 불법적 석면철거사건이, 2월에는 서울지하철, 3월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석면공장이었던 KCC수원공장의 석면철거문제가, 4월에는 충남지역 석면광산 주변 마을 주민 1000여 명이 폐에 이상이 있고 300여 명이 실제 석면질환에 걸렸음이 확인됐다. 작년에는 석면광산문제, 서울지하철문제, 제천의 초중학교 석면오염, 삼성본관 석면문제, 베이비파우더 탈크석면문제, 화장품과 의약품석면문제, 시멘트 석면문제, 공공기관 석면문제, 왕십리뉴타운의 석면문제, 염전의 석면문제 그리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등 열차객차 석면문제 등이 쉴새 없이 이어졌다.

 

석면문제가 이처럼 큰 사회문제화 되자 국회가 석면피해구제법을 제정했다. 노동부는 산업안전관리법을 개정했고 환경부는 석면안전관리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인 서울시 역시 석면관리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대책은 터져나오는 각종 석면사건의 특징을 하나 둘씩 반영하는 수준에 머물러 ‘석면사건을 뒤쫓아가기 바쁜 정부정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필자가 서울시의 약속이행 여부를 확인해 보니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상황이었다. 주민감시단은 작년에 실질적으로 석면감시활동을 전개했던 철거지역의 세입자들을 모두 배제하고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소속 환경단체 등을 대신해 각 구청의 관제주민단체 회원들과 학교장 및 동장 등이 추천하는 학부모들이 감시단원 명단에 올라있었다. 그리고 왕십리, 용산 등에서 이들의 감시활동은 극히 미미했으며 전문성 역시 결여돼 있다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왕십리뉴타운 석면철거현장 한가운데서 7개월 이상 운영돼 어린이 석면노출문제로 알려진 홍익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요구한 암보험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석면에 노출되면 10년에서 50년까지 긴 잠복기를 지나 암에 걸릴 수 있는데 서울시는 만기 20년짜리 암보험을 들게 했다는 것이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답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일부 학부모가 그것마저 놓칠까봐 서명을 했는데, 이를 가지고 학부모들이 흔쾌히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2008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공언한 환경부장관의 중피종환자에 대한 역학조사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는 뉴타운과 재개발의 이름으로 건축물이 마구 철거되면서 석면먼지가 날리고,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는 냉난방시설을 한다면서 석면건축자재를 함부로 뜯어내 아이들이 1급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석면제품의 제조·사용·유통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고 했던 2009년 기준치의 70배나 되는 석면에 오염된 베이비파우더가 버젓이 팔렸다.

 

정부는 작년 석면종합대책을 수정 발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매년 5120명씩 30년간 15만3600명의 석면피해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매년 악성중피종암환자가 400명, 폐암환자 400명, 석면폐환자 320명, 흉막질환자 4000여 명 등이다. 모두 치료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중피종과 폐암의 경우 예후가 극히 나쁜 병으로 평가된다. 즉 잔여수명이 매우 짧은 악성질병이라는 말이다. 석면폐나 흉막질환자의 경우 암으로 악화될 가능성 마저 있다. 프랑스에서는 석면에 의한 폐암피해보상이 중피종보다 2배나 많아 이를 적용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매년 석면폐암피해자가 800명씩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 일반적인 석면사용국가와 다른 두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30여 개가 넘는 석면광산 주변의 석면비산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석면함유건축물의 대대적인 철거과정에서의 석면비산문제다. 석면광산 폐광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수많은 피해자가 나타나고 있고 재개발문제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 터져나올 것이다. 석면을 ‘조용한 시한폭탄’라고 부르는 것은 긴 잠복기를 거쳐 터져나오는 특징 때문이다.

 

환경피해 해결의 원칙 중 하나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석면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석면광산이 모두 문닫은 지 오래돼 가해자가 사라져 버렸고 재개발지역에서의 석면노출의 경우 책임자를 지목하기 애매하다. 석면관련 재개발사업의 주체가 정부(지자체), 조합 등과 시행사, 건물철거사업자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석면문제는 채광->제조->사용->폐기의 전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노출되는 산업재해문제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노출되는 환경재앙으로 확대되고 있다. 수십년이 흐른 후 왜 이렇게 한국에 폐암과 중피종암환자가 많은지에 대한 조사에서 과거 대규모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석면철거가 엉망으로 진행돼 그랬다는 역학조사를 받아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때는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허가했으면 석면철거를 직접 담당한 정치인과 공무원, 건설사직원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없을 것이다. 애꿎은 피해자들과 유족들만 가슴을 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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