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기여도 크지만 지원에는 소외돼

농업적 가치 재평가, 잠재력 발전시켜야

 

부장님사진(정향영).

▲ 국립농업과학원 정향영 농업생물부장

 

지난 2006년 미국 플로리다의 아몬드 농장에서 화분매개로 갖다 놓은 꿀벌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시적인 사건이라 여겨졌지만 세계 각국에서 이와 유사한 봉군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 연이어 보고되면서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 휴대전화에 의한 전자파의 영향,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살충제 중독 등 이러저러한 추측만 난무할 뿐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구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꿀벌의 감소 및 소멸로 생태계 파괴, 더 나아가 인류의 멸망까지 점쳐지면서 꿀벌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류가 벌을 이용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꿀을 따는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로 약 1만3000년 전의 일이다. 실제 인간이 꿀벌을 사육한 것은 성서나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같이 약 5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약 2000년 전인 고구려 시대부터 동양종 꿀벌(토종)을 사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양봉산업은 1902년 고종황제 제위 시 독일 선교사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서양종 꿀벌(양봉)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민간에서 자발적인 확대 및 발전이 이뤄졌다.

 

조사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꿀벌 사육농가는 약 4만호로 200만 봉군을 사육해 연간 약 4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봉농가 소득의 대부분은 아까시아 꿀이 차지하고 있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잦은 이상기후와 꿀이 나오는 밀원수의 부족으로 채밀(採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양봉농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양봉 소득원의 발굴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에 양봉산물 가운데 로얄제리가 식품첨가물이나 의약품의 원료로 상용화되거나 프로폴리스가 치약 및 화장품의 첨가물로 개발되기도 한다. 특히 봉독의 경우 국외에서는 이미 추출물을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가 개발돼 대체 의약품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식용 수벌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수벌번데기를 고급식품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 아직까지 식용화되거나 건강보조용 기능성 소재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편 최근 꿀벌이 주목받는 부분은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화분매개의 역할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500개의 작물 중 30% 정도가 꿀벌에 의해 수정되고 있는데 봉군붕괴현상(CCD)으로 인해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릴 수 있다. 어떤 학자는 화분매개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궁극적으로 지구 생태계가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 1999년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아몬드 생산을 위한 화분매개 자원인 꿀벌의 이용 확대를 위해 양봉업자들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딸기와 같은 시설 재배농가에서 꿀벌을 이용한 농작물의 화분매개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꿀벌이 자연생태계를 유지 보전한 공로를 인정해 쌀소득보전 직불금이나 경관보전 직불금과 같이 양봉농가에 자연생태 보전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꿀벌의 무궁한 가치는 미래 과학발전의 모델역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하버드대학에서는 ‘Robobee’라는 로봇 꿀벌을 개발한 바가 있다. ‘Robobee’는 식물의 수정뿐만 아니라 인명 구조 등 위험한 환경 탐사 등에 이용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훈련을 통해 꿀벌을 이용해 지뢰를 탐지하는데 시도되기도 한다. 이렇듯 꿀벌의 생체기능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국내 양봉산업은 벌꿀, 로열젤리, 봉독, 프로폴리스 등을 통해 농가 소득에 기여하거나 국민 건강에 기여 한 바가 큼에도 정부지원으로부터 소외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양봉산업의 유․무형적 자산가치를 재평가하고 그에 걸맞은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꿀벌을 소중하게 보존하려는 국민 모두의 관심 역시 필요하다. 이처럼 꿀벌이 가지는 농업적 이용가치와 환경보존의 가치를 재평가해 우리 농업과 농촌의 새로운 활로를 불어 넣고 신성장동력 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관·산·학이 한마음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 결과로 자연과 인류의 균형 있는 발전과 진정한 의미의 녹색성장을 이룩해 우리 농업이 미래의 고부가 식품산업으로, 생물소재산업으로, 자연환경을 지키는 농업으로 발전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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