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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세이 ‘호랑이와 올챙이’

호랑이

인물자료.
▲허성호 대기자
바람에 넘실거리는 산자락의 녹음, 하늘과 맞닿아 길게 드러누운 산허리, 겹겹이 화첩처럼 펼쳐지는 산의 능선들, 계절따라 옷을 바꿔입고 패션쇼를 벌이는 요염한 자태의 자연, 입산 첫걸음과 더불어 나를 반기는 숱한 나무들과 꽃들의 유혹과 향연은 가슴을 터질듯이 설레게 하고 자연과 영원의 밀어 속으로 점입시키곤 한다. 필자는 삼십여년을 산과 더불어 살아왔다. 입산 후, 자연의 음미속으로 빠져들면 어느 순간 무아지경에 이르러 일상의 연이 닿은 숱한 사람들과의 기억의 상념이 끊기곤 한다. 자연의 4차원으로 빠져든다고 할까. 그래도 은밀한 형형색색의 녹음생명체들이 전해오는 무언의 밀어에 일일이 가슴과 영혼으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때로는 자연으로부터 전율하는 뜨거운 설레임과 작은 흥분도 느낄때가 있다.

 

서울경기의 빼어난 몇몇 1천미터 급 산들을 벗어나, 해마다 5,6,7월에 한차례 씩 내설악을 혼자서 환주하곤 한다. 새벽 3시에 용대리 주차장에서 출발해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 마등령- 공룡능선- 희운각- 소청을 거쳐 오전 11시20분에 대청봉에 오른 후,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 백담사- 용대리에 오후 여섯시에 리턴 한다. 내설악 52킬로를 15시간에 당일 환주하는 것이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5킬로를 120분에 오르는 평균 속도다. 오세암 주지스님은 설악에 동자승 출가 이래 내설악 당일 환주는 필자가 최초라 칭했다.

 

지난 2005년 5월 8일이다. 포천 화현면 소재 운악산 정산에서 가평군 상판리 석산방향 인적이 뜸한 능선을 걷던 중 발 끝에 시커먼 물체가 걷어차였다. 되돌아 찾아보니 멧돼지 앞발목 하나가 정강이가 으깨져 씹힌 채 나뒹굴다 발 끝에 차였다. 멧돼지 발목을 씹다 버렸다면 야생동물 먹이사슬 중 최상위의 포유동물에 속하는 맹수일 것이라는 추측인데 필자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배낭에 보존해 하산했다.

 

1주 후인 5월 15일 다시 운악산에 올랐다. 12시15분경 정상에서 화현면 포천군 산림휴양소 능선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할 때였다. 저 아래 서너번째 능선 봉우리를 향해 6-7백미터의 수직벽에 가까운 암벽을 누런 황소 한 마리가 거침없이 암벽을 오르고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틀림없이 황소 한 마리로 보였다. 필자는 능선을 따라 빠르게 하산하고 있고 황소같은 동물은 내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능선정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십오분 뒤 8부능선세 번째 봉우리 조망대 쯤 도달했을 때 우측 계곡 암벽방향에서 느닷없이 불과 6-7미터 능선의 눈앞에 엄청난 크기의 맹수가 나타났다. 필자는 호흡이 멎는 듯한 경악의 상황에서 내닫던 발걸음을 참나무 줄기를 충돌하듯 끌어안고 제동해 멈춰섰다. 동시에 “퓨마다!”하고 비명을 질렀다. 왜 하필 퓨마라고 외쳤는지 모른다.

 

능선에 나타난 맹수는 필자를 향해 좌로 봐 자세로 멈춰섰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120-130백쎈티 쯤이고 머리높이가 약 120쎈티쯤 될까. 어깨쭉지 골격은 가히 황소에 맞먹을 골격이고 땅을 짚은 발은 필자의 손을 쫙 펼친 정도의 크기였다. 황갈색 털이 윤기가 흐르며 풍족히 전신을 감싸고 검은줄 무늬가 연하게 세로로 깔려있었다. 맹수는 부릅뜬 눈과 큰 입을 꽉 다물고 필자와 일체의 동작없이 눈빛을 대치한 채 약 오십에서 칠십 정도 셀 수 있는 긴 타임을 대치했다. 대치가 끝나자 맹수는 좀 전에 올라왔던 우측 암벽방향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주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때 땅에 닿을 듯 긴 꼬리가 약1미터는 족히 될 듯 싶었다. 그리고는 맹수는 암벽 아래로 사라졌다. 필자는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집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금 뭐를 본지 알아요. 집에 계신 그분을 봤어요” 라고 했다. 그분이란 결혼 직후에 우연히 선물 받아 보관해 온 길이 40쎈티에 키25쎈티 쯤 되는 칠보석 호랑이 석상인데 좌로 봐 자세에서 포효하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그와 동일한 자세와 생김새의 맹수를 눈앞에서 대치한 것이다. 2005년 5월 15일 정오 12시30분의 일이다. 운악산은 해발 940미터로 청계산- 국망봉- 명지산- 화악산 등 포천-화천에 이르는 수

백킬로 산맥이 연결돼 있어 맹수류 호랑이의 먹이사슬군이 확보돼 있음직 하다.

 

그 후, 환경부 동물담당 직원과 협의도 하고 일주일전 멧돼지발목이 씹힌 채 발견된 정황 등 여러 경로로 확인결과 호랑이쪽으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외부로 공식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첫째 이유는 자연과 더불어 생존해온 맹수의 보전된 생태를 파괴해선 안되겠다는 이유였고, 둘째는 필자의 일신상 우연한 인연의 고리가 있어서였다. 결혼 직후 우연히 칠보석 호랑이 석상이 선물로 들어와 평생을 가보로 간직하고 살아왔고, 첫째 아들이 호랑이가 필자를 등에 업고 큰 산을 너머 어떤 큰 집으로 들어가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필자는 크리스챤이지만 우리 문화의 정서로 볼때 일신과 가문에 상서로운 징조와 계시로 해석 돼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리지는 않았다.

 

올해는 호랑이 해다. 우연이긴 하지만 호랑이해 3월22일에 언론인으로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필자는 평생을 자연과 산과 더불어영적인 공감대를 니지고 살아왔다. 생전에 그렇게 살아가는 게 작은 소망이다. 산과 자연은 인간의 아집과 교만을 겸허히 내려놓게 한다. 그게 사람들과 더불어 무난히 공생하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까.

 

지난 유월초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후투티를 기다리며」라는 에세이집 한권을 샀다. 필자가 자연과 더불어 영적인 밀어를 나누는 미시적 환경인이라 분류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흙과 물과 하늘과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원초적 생태와 존재적 생태사이에 평범하고도 섬세한 손짓과 몸짓으로 인간이 공존해야하는 철학적 시각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정의하는 인문환경(human environment)의 범주를 아우르는 평범한 필체의 거시적 시각으로 생태사물을 관찰하고 인간의 존재철학을 접목시키는 필체가 돋보인다.

국내의 어류 수생생태계에서- 파충류와 양서류의 토양육상생태계- 조류생태계, 해외의 괌- 일본 -옐로우스톤까지, 줄납자루- 올챙이- 후투티 새- 야생 곰에 이르는 환경과 인간의 공존 사이에서 치밀한 관찰력과 철학적 시각으로 환경파괴에 기인하는 먹이사슬의 단절에 의한 생태계의 퇴화변천과 소멸과정을 예리한 시각과 대화로 치밀하면서도 소탈하게 서술하고 있다.

 

요즘, 유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환경의식과 자연과 생태계의 경건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구사하고 있는 시대에 「후투티를 기다리며- 필자:단국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송명규 교수·현대생태사상의 이해 저술, Aldo Leopold의 원작 ‘모래군의 열두달’ 번역」는, 생태환경을 가족의 공동 관찰을 통해 생명체의 경건성을 부각시키고 소멸 고갈돼 가는 환경과 인간을 고찰케 하는 한권의 금서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허성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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