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님

사각지대에 놓인 해체·제거 근로자 교육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참여 기회 필요

 

석면안전관리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본격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석면 해체·제거공사에는 반드시 감리인을 두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이에 발맞춰 최근 노동부는 석면 해체·제거 공사 감리인 제도와 관련해 기존 건축공사와 철거공사 감리인으로 지정된 건축사에게만 자격을 줄 것인지, 다른 직역의 관계자에게도 이를 허용할 것인지, 기존 건축사에게 감리인 자격을 주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등을 민간연구용역과제로 발주하는 공고를 냈다.

 

정부가 새로 도입하려는 석면공사 감리제도가 서서히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이해 관계자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산업위생 또는 산업보건 관계자들은 산업위생기술사나 산업위생관리기사에게 감리인 자격을 줘야 한다고 한다. 환경 분야 관계자들은 대기관리기술사나 대기환경기사들에게 감리인 자격을 줘야 한다고 한다. 건축 관계자들이 건축사에게 감리인 자격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석면전문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갑자기 석면이 우리 사회에서 ‘스타급 유해물질(발암물질)’로 떠오르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심지어는 과거에는 석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까지 나서서 관련 협회나 재단을 만든다, 석면 조사자와 해체제거업체 관계자 교육을 한다, 정부의 연구용역을 맡는다 해서 치열한 텃밭 일구기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힌 돌은 자신의 텃밭에 다른 돌들이 굴러들어올까 노심초사한다.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빼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적어도 함께 텃밭을 일구려고 애쓴다.

 

이 때문에 선발주자의 이점을 살린 기존의 ‘박힌 돌’은 석면에 관한 온갖 일에 손을 뻗친다. 재벌의 문어발 기업 확장처럼 사업영역과 연구용역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석면조사·분석에서부터 석면해체·제거, 석면건물관리, 감리, 석면교육, 폐기물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와 탈크나 자연발생석면 조사, 석면광산 복원 등 거의 모든 주제에 이들이 끼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이처럼 불과 몇 명(또는 단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석면 관련 정책에 대부분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바람에 때로는 연구용역의 중복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기존 자료나 다른 용역보고서 베끼기도 심하다. 완결성이 떨어지는 석면 관련 제도나 정책이나 비현실적인 내용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석면 해체·제거 근로자에 대한 교육이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또 해체·제거관리자와 조사자의 재교육에 관한 규정을 만들지 않아 한번 교육받으면 평생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다양한 전문가에게 연구를 나눠 맡겼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석면계의 나쁜 풍토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쪽으로 굴러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2~3년이 지나도록 석면 관련 연구용역을 단 한 건도 따내지 못하는 석면전문가나 석면전문기관이 있는가 하면 어떤 전문가나 기관은 일 년에 3~4건씩 용역을 맡는 심각한 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것까지 용역을 맡기도 한다. 정부는 이런 현상에 ‘나 몰라’하고 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간다. 제대로 된 석면 정책, 다양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짜낼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석면 감리인 제도도 마찬가지다. 건축사가 됐건, 산업위생기술사가 됐건, 대기환경기술사가 됐건, 아니면 그 분야 관리기사가 됐건 제대로 된 석면 해체·제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최근까지 거의 없었다. 이는 이런 자격증을 가진 대부분이 석면 감리인이 될 수 있는 기초지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 어느 직역에 있는 사람이든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석면감리인이 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번 석면 감리인 제도 도입을 계기로 석면계도 환골탈태해야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최대한 힘을 합치는 것이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신뢰를 얻으며 활동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앞으로 이뤄질 석면 감리제도 연구용역에서도 다양한 전문가가 석면공사 감리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줘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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