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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건축가는 생태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일보 한선미 기자] 녹색성장, 지속가능한 성장이 등장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철학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의 일환으로만 보는 잘못된 실태가 지적되고 있다. 최근 건축가인 이일훈 씨는 녹색철학을 다룬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를 발간했다. 이에 이일훈 건축가를 만나 녹색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편집자주>

 

Q. 건축가가 환경책을 낸 것이 흥미롭다.

 

A. 지금까지 발간했던 책 중에 직업과 가장 관련성이 낮은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녹색철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건축가이다 보니,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오해하는데 녹색철학을 다룬 책이다.

 

사실 건축입장에서 환경은 지엽적 파편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부터 환경에 관심이 깊었지만, 건축가로서 많이 생각하고, 반성하게 됐다. ‘생명의 숲’이라는 활동단체의 월간지 ‘숲’에 연재한 글을 묶은 이번 책은 환경과 생태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 책으로 이전에 발간했던 책들보다 애착이 간다.

 

Q. 숲을 생명 자체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A. 숲에서 많은 생태적 가치를 배울 수 있다. 숲에서는 여러 생물체가 관계성을 가지고 생활한다. 숲을 통해 식물적 사유의 관점을 넓히고자 숲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숲에는 여러 존재가 살아가고 있어 매우 유기적인 생태 관계를 맺고 있다. 유기적 관계는 환경보다 상위 개념인 생태의 기본이다. 이를 테면 ‘생태를 보호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단순한 인공 숲이 아닌 유기적인 숲을 만들고자 한다.

 

예를 들어 나비가 사라지고 있다고 가정할 때 나비를 먹는 새가 많아 나비 개체수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새가 살 수 있는 터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먹이사슬로 이어져 새, 나무 등 숲에도 영향을 준다. 이렇듯 숲은 굉장히 많은 연계망으로 이어져 있다. 이는 곧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숲의 지혜를 따르면 수많은 경계로 살벌해진 도시 환경을 유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숲은 조화롭고 균형있게 이뤄져 있다. 숲은 불균형이 된다면 파괴되고 만다. 인간관계, 사회 현상에서도 균형을 잃으면 유지되기 어려운데 이러한 지혜를 숲에서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다.

 

Q. 숲의 지혜를 일상에 도입할만한 아이디어는 없나?

 

A. 도시의 길을 보면 가로수가 있다. 하지만 가로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똑같은 모양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숲의 지혜를 가로수 모습이 달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 보기 편하게 일정 간격에 같은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간격으로 다른 종류의 나무를 심어 유기적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Q. ‘채나눔’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안다.

 

A. ‘채’는 집을 세는 명사이고, ‘나눔’은 나누다의 명사형으로 합성조어이다. 최근 건설, 문화 부분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집을 한 덩어리로 보지 말고 많이 나누자는 것이다. 한 덩어리를 할 수 있는 것을 두덩어리로, 두 덩어리는 세 덩어리로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건설방식을 조상의 지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서 이러한 지혜를 잊고 살고 있어 이를 반성하는 의미로 제안한 설계 방법론이 ‘채나눔’이다.

 

건축은 시대, 산업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데 현대 건축물의 대형화는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일반화 됐다. 이는 곧 대형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어지면서 고층화,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필요에 따라 건축 밀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건축물이 그렇게 진행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중은 보편적인 인식이 건축 대형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작은 건축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작은 건물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채나눔을 제시했다.

 

Q. 불편하게 살기를 강조했다.

 

A. ‘불편하게 살기’는 채나눔을 언급하면서 제시한 철학으로 이번 책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 아니다. 한 공간에서 살면 편한데 2~3공간으로 살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으로 받아들이면 나눠진 것에 대한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불편하다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할 때 얼마나 불편하고 고생스러운가, 하지만 건강한 몸을 가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것이 우리 생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러한 방법들을 우리가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식물성 사유는 다름을 인정하고 불편하더라도 조금씩 개인의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의 유익함을 퍼트리자는 것이다.

 

Q. 최근들어 ‘녹색성장’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

 

A. 녹색성장은 매우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하지만 냉철하게 방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녹색에 방점을 찍으면 성장이 줄고, 성장에 방점을 찍으면 녹색이 줄어든다. 상호 가치충돌이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 위해 녹색성장을 실천하기 전에 녹색성장과 관련한 모든 사람이 녹색철학에 동의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녹색철학 없이 이뤄지는 녹색성장을 추진하고 있어 속도나 방법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더욱 성공적인 녹색성장을 위해 철학적인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녹색철학이 동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녹색성장은 자칫 공허한 주장으로 남을 우려가 있다.

 

freesmhan@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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