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b40717

[환경일보 한선미 기자] 환경정책을 뒤늦게 추진해 온 우리나라로서는 선진국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환경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에 본지는 국내 환경정책의 변천사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환경규제의 체계를 위한 기초를 형성해 온 환경법은 우리나라에서 지난 50여년 동안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환경보호를 위해 적절한 변화를 거치면서 존속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유례가 드문 압축 성장(Condensed Growth)을 했고 이러한 성장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효과인 환경오염의 악화를 겪은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 예일대 환경법·정책센터와 콜럼비아대 국제지구과학정보센터가 2년마다 한번씩 산정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환경성과지수(EPI)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10년 환경성과지수평가에서 57.0점을 받아 평가대상 163개국 가운데 94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30개 회원국 중 꼴찌다.

 

이 지표에 최근의 통계가 반영이 되지 않아 신뢰도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2008년 순위(전체 149개국 중 51위, OECD 30개 회원국 중 26위)보다 크게 떨어진 것을 보여주는 지표여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순위의 국가는 니카라과(51.1점, 93위)와 가봉(56.4점, 95위) 등이다. 2010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이산화황(145위), 질산화물(148위), 비메탄휘발성유기화합물(156위), 오존(132위) 등 모든 대기오염물질지표에서 최하위권의 불명예를 안았고, 또 농업보조금(153위), 산업부문 온실가스집약도(146위), 생물군보호(119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118위) 등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오염의 악화를 막거나 최소한 현재의 환경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환경정책의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환경입법이 요구된다. 환경정책이란 “환경오염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상태의 환경을 유지·개선해 바람직한 환경상태를 달성하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환경정책 수단을 결정하는 정부정책의 방침”을 의미한다.

 

최초 환경법인 ‘공해 방지법’ 제정(1960~1970)

 

공해방지법.

▲1963년 국민 보건의 향상을 기하기 위한 최초의 환경법인

‘공해 방지법’ 이 제정됐다.<사진=환경부>

이 시기는 1977년 ‘환경보전법’이 제정되기 이전의 시기로서, 1963년 11월5일 법률 제1436호로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법인 ‘공해방지법’이 제정됐다. ‘공해방지법’은 ‘공장이나 사업장 또는 기계·기구의 조업으로 인해 야기되는 대기오염·하천오염·소음·진동’으로 인한 보건위생상의 피해를 방지해 국민보건의 향상을 기하는 데 그 구체적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공해방지법’은 전문이 21개조에 불과해 규율내용이 크게 미흡했을 뿐 아니라, 동법시행규칙이 1969년 7월에야 제정되는 등 후속입법이 미비해 일종의 관념법이었다. 또한 ‘공해방지법’은 제정됐지만 공해행정을 전담할 조직도 없었고, 법 시행에 필요한 예산도 거의 책정되지 않았다.

 

물론 이 시기에는 ‘공해방지법’ 외에도 ‘오물청소법’(1961. 12. 30), ‘수도법’(1961. 12. 31), ‘독물및극물에관한법률’(1963. 12. 31), ‘하수도법’(1966. 8. 3), ‘조수보호및수렵에관한법률’(1967. 3. 30) 등의 환경관련법이 있었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면서 1971년 1월 그동안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공해방지법’을 대폭 수정강화해 배출허용기준, 배출시설설치허가제도, 이전명령제도 등을 도입했다.

 

요컨대 이 시기는 ‘경제발전제일주의’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의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환경문제가 주요 정책문제로 표명되기도 전에 질식시켜 버리든가 의사결정의 장에 도달하기 전에 죽여버리든가, 만일 이러한 방법이 성공하지 못하면 정책결정이나 집행단계에서 이를 파괴, 좌절시켜 버리곤 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바흐라흐(Bachrach)와 바라츠(Baratz)에 의해 정립된 ‘무의사결정론’으로 이해될 수 있는 시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환경보호의 헌법적 근거 마련(1977년~1989년)

 

이 시기는 1977년 ‘환경보전법’이 제정된 후 1980년대 후반까지의 시기이다. 급속한 산업화·도시화가 이뤄지던 1970년대에는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인식됐다. 그렇기 때문에 소극적인 공해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종래의 ‘공해방지법’ 체계로는 다양하고 광역적인 환경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이를 대체하는 ‘환경보전법’을 1977년 12월31일 제정·공포하게 됐다. ‘환경보전법’에서는 환경파괴 또는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제도, 환경기준, 산업폐기물처리 등을 새로이 도입했다.

 

국립환경연구소.

▲1980년 헌법에 환경권에 규정됐다. 이 시기

헌법에 환경권이 수용되는데 학자들의 기여가

크게 작용했다. 사진은 1978년 국립환경연구소

현판식<사진=환경부>

종래의 ‘공해방지법’이 대기오염·수질오염 등의 공해적 측면만을 대상으로 한 데 비해, ‘환경보전법’에서는 그 대상을 자연환경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환경문제와 사전예방적 기능으로까지 확대했다. 또한 ‘공해방지법’이 현재의 국민보건의 향상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환경보전법’은 현재의 국민은 물론 장래의 세대까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환경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1980년 헌법 제33조에서 환경보호를 기본권조항의 형태로 처음으로 신설하고 더 나아가 1987년 헌법(현행 헌법) 제35조에서 이를 계승·발전시킴으로써 환경보호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매우 그 의미가 크다.

 

1980년 제8차 헌법개정시 환경권을 규정할 것인가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으나, 1980년 헌법 제33조에 환경보호를 기본권조항의 형태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용했다. 이렇게 헌법상 환경권이 수용되는 데에 학자들의 기여가 매우 컸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은 그 제33조에서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환경권을 규정했다.

 

더 나아가 1987년 제9차 헌법개정에서는 환경의 실제화를 위해 법률 유보에 관한 사항과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한 쾌적한 주거생활보장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 관한 내용이 환경권 조항에 추가돼 이것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린다. 이에 관해서는 환경권의 대상이 되는 환경에 사회적 환경까지도 포함시키는 견해가 있는데, 그 헌법적 근거를 제35조 제3항의 쾌적한 주거생활의 보장조항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35조 제3항은 환경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혼동해 규정한 결과 생겨난 조항이어서 문제가 없지 않다.

 

즉 환경보호의 필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그것을 기본권조항의 형태로 헌법에 규정하게 되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는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헌법개정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1980년 1월20일부터 법제처 내에 헌법연구반을 설치해 헌법에 관한 연구를 추진해 왔다.

 

원고 : 고문현 교수(숭실대학교 법학과)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