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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막을 길은 ‘총량 감축’

김지석 여권사진-2010.

▲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팀

김지석 선임 기후변화 담당관

철강 1톤당 온실가스 배출 줄여도 전체생산 늘면 헛수고

영국기업연맹, 배출권 거래제 가장 유리하다 결론지어

 

1952년 12월 런던에서 며칠간 바람이 잘 불지 않아 오염물질이 대기 중에 심하게 쌓이게 됐다. 이런 상태가 며칠간 계속되자 만이천명의 런던 시민이 사망했으며 수만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됐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런던시민들은 ‘공기에 오염물질이 많아지면 사람이 살 수 없다’라는 과학적 사실을 끔찍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이후 영국은 1956년에 대기 환경법을 제정하는 등 규제를 강화해 사람들이 수천명씩 죽어나가는 일은 없어졌다.

 

이렇게 환경규제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공기가 탁해져서 수천명이 며칠사이에 죽어나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라는 사회적 목적에 맞는 수준으로 정하게 된다. 온실가스를 감축해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논의도 결국 과학적 근거가 기준이 된다. 수천명의 학자들이 수십년간 연구한 결과 현재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인 1800년대의 온도 수준에서 섭씨0.7도 정도 상승했으며 이로 인해 각종 이상기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더 나아가 이대로 온도가 계속 상승해 섭씨 2도 이상 오를 경우 식량생산 저하 및 기온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매우 끔찍한 상황이 온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런 파괴적인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숲을 보호하고 산업활동과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삼림파괴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는 결국 산업활동과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온실가스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계,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업체의 입장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줄이는 총량감축목표가 아니라 제품 생산단위당 배출량, 즉 원단위 감축 목표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원단위 감축도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철강1톤을 만들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 1.8톤이라면 이를 철강 1톤당 1.6톤으로 줄이는 것은 분명히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의 총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원단위 배출량을 목표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철강 생산1톤당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5% 줄어들더라도 철강생산량이 10% 늘어나면 결국 총 배출량은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원단위 감축은 성의있는 노력이기는 하나 총량이 늘어날 경우 기후변화를 막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원단위 감축은 고혈압 환자가 매끼니 마다 먹는 소금의 양은 줄이겠지만 의사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처방한 하루 총 섭취량 목표를 지키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과 같다. 원칙이 있는 의사라면 총섭취량 목표를 지키도록 강제할 것이다. 의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지, 단순히 환자의 노력을 인정해주고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에 대한 격려는 해줘야 한다.)

 

유럽 기업들의 경우 총량 감축의 필요성을 직시하고 온실가스 총량 감축 목표 달성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 물론 유럽 기업들이 모든 규제를 순순히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감축 목표에 대해 항의도 하고 소송도 하고 로비도 하고 있다. 하지만 총량 감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 100대 기업중 80개 이상의 기업을 포함해 총 24만 회원사를 거느리고 있는 영국 기업연맹(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ies, 우리나라의 전경련과 상공회의소에 해당)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 논의 초기부터 어떤 정책이 온실가스 총량 감축이라는 전지구적인 목표에 부합되면서 동시에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결론은 총량 감축을 전제로 한 배출권 거래제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적에도 부합하고 기업에게도 가장 유리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럽의 전력 생산업체들도 자체적으로 모의 거래를 해보고 결과를 분석 해 본 결과 배출권 거래제가 전면적인 탄소세에 비해 기업의 부담이 적다는 결론을 도달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업체들간 모의 거래를 할때 일부 업체들이 원단위 목표를 인정해달라고 해서 원단위 목표에 대한 선택권을 줬는데 실제로는 원단위 목표를 선정한 기업은 없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배출권 거래제 관련 논의를 하다 보면 기업들이 ‘배출권 투기세력이 참여해서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생산비용이 늘어나지는 않을지, 관리비용이 늘어나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가지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기업들이 이런 우려에 더해 ‘산업계의 노력이 부족해 기후 변화를 막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좀 더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걱정을 가지고 기후변화를 막는데 필요한 총량 감축에 대한 논의에 임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 후손들이 ‘기후변화가 너무 심해지면 살기가 너무 힘들어진다’라는 것을 끔찍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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