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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환경운동, 세상을 바꾸죠”

 

매화마름 군락지, 보전활동 통해 ‘람사르 습지’ 등록

사라지는 도심 녹지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해

 

사진 049--.
▲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양병이 공동대표
[환경일보 조은아 기자] 우리는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오래 몸담아 기술·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고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양병이 명예교수는 35년간 ‘환경’이라는 한 분야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아직도 자신을 배울 것이 많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자가 양병이 교수를 만나러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높이 산처럼 쌓여 있는 환경관련 책들이었다.

 

양 교수는 “책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여유롭지 않아 어쩌죠”라며 멋쩍은 듯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국내 첫 생태마을 조성에 참여하고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이끌어온 장본인인 양 교수는 지난 8월31일 35년간 몸담아 온 서울대학교를 정년퇴임했다.

 

“글쎄, 감회가 새롭긴 하지만 정년퇴임이라는 것이 어떤 일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잖아요.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환경보전, 가치에 ‘가치’를 더하다

 

“그동안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뿐만이 아니라 가시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제가 NGO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도 아마 그런 연구에서 한 단계 나아가 직접적인 효과를 얻기 위함이었죠. 특히 그 활동들은 네거티브 방식이 아닌 포지티브 방식, 즉 긍정적인 방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양병이교수 삼실에서--.

▲ 양병이 교수 사무실에는 그가 그동안

보낸 환경의 시간만큼이나 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쌓여진 책들과 환경사랑의 양은

정비례한 듯하다.

양 교수는 현재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며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양 교수가 말하는 긍정적인 환경활동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해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을 의미한다. 영국에서는 이미 120년 전부터 시작됐으며,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 시작해 1990년대 중반 ‘그린벨트 해제 반대운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있는 자연유산이나 문화유산들 중에는 보전되지 않고 그냥 방치되고 있는 곳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 지역에 대해서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시민의 모금을 통해 그 장소를 매입, 보존하는 것이 내셔널트러스트의 가장 큰 목적이자 역할이죠”

 

지난 2000년 사단법인으로의 결성 이후 광주 무등산 사기 운동, 태백 변전소 부지 사기 운동, 대전 학술원 지키기 운동 등을 전개해왔다.

 

그중에서도 강화군 매화마름군락지의 보존은 양 교수가 꼽는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이다.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인 ‘매화마름’은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 식물로, 1998년 내셔널트러스트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의 매화마름군락지를 발견하고 보전지역으로 선정했으나 당시 경지정리사업 지역에 포함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매화마름군락지가 있는 논이 경지정리사업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업 담당자와 지역주민 설득에 나섰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죠. 하지만 지속적인 대화와 대안 제시를 통해 매화마름군락지를 제외한 지역을 대상으로 경지정리사업이 진행됐습니다. 또한 매화마름이 서식하고 있는 논을 매입해 친환경 논 경작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시 주민간담회 및 지자체장 협의 등의 활동과정을 한 결과, 매화마름이 서식하는 농지 소유자가 보전 의사를 전했고, 2002년 시민모금을 통해 총 3009㎡ 중 2640㎡를 매입하고 369㎡를 기증받아 보전하게 됐다. 이후에도 그 논에서 친환경 재배공법을 통해 생산된 ‘친환경쌀’을 상표등록해 판매하는 등 지역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매화마름.

▲ 인천 강화군의 매화마름군락지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보전활동을 통해 ‘람사

르 습지’로 등록됐다. 사진은 멸종위기종 식물인 매화마름의 모습. <사진=환경부>


이런 노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0월13일 람사르 총회 때 이 지역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것이다. 이는 논이 습지로 지정된 최초의 사례였다.

 

양 교수가 이런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바로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강화군의 매화마름군락지는 이런 활동이 확대되다 보면 좀 더 높은 가치를 갖는 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한 단계 발전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외에도 내셔널트러스트는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兮谷) 최순우가 거처하던 한옥을 매입해 ‘최순우 기념관’으로 보전하고, 조각가 권진규의 아틀리에도 수리과정을 거쳐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마련하는 등 환경과 문화를 아우르며 보전가치가 있는 곳들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기부문화가 잘 형성돼 있지 않아 어려운 점이 많이 있어요. 보전해야 할 곳은 굉장히 많은데 그에 대한 재원확보가 쉽지 않죠. 앞으로 많이 알리고 우리의 뜻을 전하는 것도 내셔널트러스트가 해야 할 일이겠죠”

 

도시의 골격인 ‘녹지’를 살리다

 

최근 그가 관심에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라지는 녹지 살리기’이다. 앞서 얘기한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 역시 보존에 대한 부분이긴 하지만 개발로 인한 도심 녹지의 전용 및 훼손 등에 대한 대책마련도 시급한 실정이다.

 

“모든 것이 경제적 기준으로 가치가 판단되다 보니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자연이라는 것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있음에도 저평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녹지가 점차 사라지는 것도 그런 자연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죠”

 

양병이 서울대에서--.
▲ 양병이 교수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애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도시’라고 하면 녹지 위에 도시가 있는 형태를 띠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도시 안에 녹지가 섞여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의 녹지비율은 10~15%로 수준으로, 녹지 비율을 10%만 높여도 도시의 온도를 1℃ 낮출 수 있는 등 녹지의 역할은 매우 크다. 독일 하노버시의 경우는 도시 내 면적이 46%에 달해 녹지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이다.

 

“조경이라는 분야는 자연과 인공적인 부분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며, 선진국에서는 조경을 통해 도시를 어떻게 재생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합니다. 도로나 상하수도 못지않게 공원 등의 녹지가 도시의 골격이 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어떻게 도시를 활성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전에 독일의 한 빈민가가 있는 도시를 간 적 있습니다. 빈민가로서는 의외의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공원’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빈민가에 무슨 공원인가 하겠지만 그곳에는 유명한 재즈연주가의 공연과 함께 직접 재즈를 연주하고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불량청소년들이 그곳에 모여 재즈를 연주도 하고 돈이 없는 빈민가 주민들은 공연을 보며 교화되고 문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공원은 단순하게 시민들이 와서 휴식을 취하는 차원이 아닌 도시를 재생시키고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조경, 융합의 시대를 맞이하다

 

현대에 와서 도시공원은 단순히 녹지의 공간만이 아닌 예술공간이자 문화공간이며 녹지공간이 되는 다기능적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경을 비롯한 타 분야와의 경계를 허물고, 관련 부처 간의 융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키워드로만나는조경.

▲ 문석기·장병관 교수들을 비롯한 16인의

양병이 교수 제자들은 ‘키워드로 만나는 조

경’ 책자를 발간하고 양병이 교수의 정년을

기념했다.

양 교수의 정년을 기념하며 제자들이 발간한 책자 ‘키워드로 만나는 조경’에서도 밝히고 있듯 조경학은 인접분야인 도시계획학, 건축학, 토목공학, 생태학, 수문학, 산림자원학, 관광학, 교통공학, 환경공학, 기후학, 디자인 등이 융합돼야 할 뿐 아니라 조경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분야와도 융합돼야 우리의 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야의 융합, 부처 간의 융합을 위해서는 먼저 만연하고 있는 부처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 부각되다 보니 같은 이슈를 두고 여러 부처에서 동시에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간적, 비용적인 문제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해지죠. 이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부처의 손익을 떠나 서로가 배려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관련 정책은 어떤 이익이나 조건을 두고 타협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만큼 정직과 신뢰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앞으로 환경분야에 몸담을 후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환경에 대한 애착’이어야 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산과 강, 도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좋은 환경을 갖고 있는 도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좋은 환경의 소중함은 늘 잊고 있죠. 우리가 자연에 대한, 환경에 대한 애착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집을 짓더라도 애착을 갖고 만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와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만큼 땅에 대한 애착, 자연에 대한 애착을 갖길 바랍니다”

 

 

“이제는 전 지구적으로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인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나라가 노력을 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모든 인류가 이제는 우리 세대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후손세대들의 발전능력을 전해하지 않도록 환경을 보전하면서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키워드로 만나는 조경’ 中에서

 

 

정년기념식.

▲ 지난 9월7일 개최한 양병이 교수의 정년 및 출판기념식에는

서울대 노융희, 최상철, 김안제 명예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해 정년기념식을 축하했다. 사진은 양병이

교수(우)와 환경일보 편집대표(좌)가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피할 수 없는 인류 공통의 숙제 ‘환경’


지난 수십년 간 환경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기상이변이 발생하는 등 기후가 변화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환경오염이, 다른 한쪽에서는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피나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제가 처음 환경을 공부할 당시만 해도 환경은 그저 막연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경제개발하기 급급한 시절이라 환경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기껏해야 공단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이슈가 되던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환경’이라는 것이 인문, 사회,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영향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인류 공통의 숙제인 셈이죠”

 

대체 ‘환경’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의 대답은 딱 한 마디. “자연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을 후손들에게 고이 물려줘야 하는데도 현재 너무 해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리라.

 

정호승 시인의 글을 보면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되고,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된다’라는 글귀가 있다. 양병이 교수는 누구보다 진정한 ‘환경인’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lisian@hkbs.co.kr

 

조은아  lisian@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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