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태.
▲글로벌오션 신원태 박사
국내 지자체 대부분 어려운 전문적 평가방식만 채택
직접 피해 입는 주민 인식 기초로 취약성 평가해야

 

 

몇 달째 지속되고 있는 태국의 대홍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기후변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후의 불확실성 증가라고 한다. 최근 해양환경관리공단이 개최한 ‘해양 및 연안지역 취약성 평가 협력증진’ 워크숍에서 한 패널리스트는 ‘예측 가능한 것은 이미 위험이 아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예측 가능하면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국의 대홍수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준비했을 것이다.

 

기후의 불확실성 증가 때문에 지구는 많은 위험에 처해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협약에서도 온실가스의 완화(Mitigation) 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적응(Adaptation)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고 적응능력(Adaptive Capacity)가 떨어지는 개도국에 대한 적응사업 실시 등 재정 지원문제도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적응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기후변화에 취약한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 기후변화 취약성 평가(Vulnerability Assessment)이다. 취약성이라는 개념은 재해분야와 보건분야 및 환경분야 등 여러 분야에서 달리 정의되고 있는데 기후변화에서는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01)가 정의하고 있는 개념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IPCC가 기후변화에 있어서는 가정 권위 있는 국제 협의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IPCC의 정의에 의하면 기후변화 취약성이란 ‘특정 시스템이 기후변화가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지 못하는 정도’를 나타내며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취약성은 노출도, 민감도, 적응능력의 함수로 표현된다. 노출도, 민감도, 적응능력은 또한 상당히 복잡한 정의가 필요한 용어들이다.

 

취약성 평가는 IPCC가 1994년 발표한 IPCC Common Methodology라는 방법론을 근간으로 해서 이의 개정판인 2001년도 작업반II의 보고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방법론은 기후변화에 대한 IPCC의 시나리오(A1, A2, B1, B2)를 바탕으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가 되는 지역의 노출도, 민감도, 적응능력 등을 파악해 평가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노출도, 민감도, 적응능력은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항목이라 지역 간 차이와 항목 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 표준화하고 정규화(normalize)하는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를 위해 도입된 기법이 지표(Index 혹은 Indicator)를 이용한 취약성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지표를 이용한 취약성평가법의 예를 들면 SOPAC의 환경취약성지표 (Environmental Vulnerability Index: EVI)라 할 수 있겠다. EVI에는 약 50개의 지표항목(indicator)이 있는데 취약성 평가를 위해 이 중 필요한 것을 골라내서 평가를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IPCC가 제안하는 방법을 Top-Down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후시나리오를 기초로 해서 각종 지표들에 대한 정량적인 값을 대입해 취약성을 판단하는 다분히 계산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많은 자료들이 필요하며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필요해 전문가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를 정책결정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그 지역주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UNDP(유엔개발계획)에서는 Adaptation Policy Framework(2005)의 방법을 제안했다. 이 방법론에 의하면 취약성평가는 적응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일부분으로 진행되며 그 방법도 주민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해서 취약성을 평가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런 방법을 Bottom-Up 방식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방법의 장점은 지역주민들의 인식 및 역량이 취약성평가를 통해서 함께 증진된다는 것이고 그 결과가 곧바로 적응정책에 반영될 확률이 높다는 데 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좁은 지역에 한정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있다. 결국 Top-Down이든 Bottom-Up 방식이든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방법 모두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녹색성장기본법에 의해 지방자치단체도 적응대책을 수립해야 하며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보고된 지방자치단체 취약성평가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 IPCC의 방법론을 따른 Top-Down 방식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 보고서는 전문가들도 알아듣기 힘든 매우 어려운 기술적인 보고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Bottom-Up 방식의 취약성평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예산과 시간 등 제약이 많아 시행되지 못하는 여건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의 능력강화와 주민들에 대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충분히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킹 카운티에서는 카운티 자체에서 ‘기후변화 준비 : 지방, 지역, 주 정부를 위한 가이드북(Preparing for Climate Change: A Guidebook for Local, Regional, and State Governments)’ 이라는 Bottom-Up 방식을 채택한 안내책자를 만들어 지방정부가 취약성평가에서부터 적응대책 수립까지 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앞으로 오랜 시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그 피해는 결국 지역주민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누가 적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가? 연구자도 아니며 중앙정부도 아닌 바로 지역주민인 것이다. 지역주민에 의한, 지역주민을 위한, 지역주민의 취약성평가와 적응대책의 수립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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