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첨단기술이 아닌 저개발국가의 빈민층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 주목 받고 있다.


과학 기술을 통해 개도국 저소득층의 복지 증진과 지역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적정기술이 사회 양극화 확대와 IT기술 발전으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적정기술은 무엇보다도 개도국 현실에 맞는 제품 개발이 중요하다. 적정기술은 기업 CSR과 역혁신의 단초로도 활용될 수 있다. <편집자 주>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형광등과 LED 조명의 확산으로 밤에도 대낮처럼 활동하고 에어컨과 전기 히터의 발전을 통해 날씨에 상관 없이 쾌적한 실내 생활을 영위하며 최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깨끗한 물이나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 채 하루 하루 연명하며 살아가는 개도국 빈민층도 많은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의 C.K. 프라할라드 교수에 따르면 연소득 3000달러 미만의 글로벌 저소득층인 BOP(Bottom of Pyramid) 인구는 40억 명에 달할 정도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존 산업 기술의 부작용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화석연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고 한정된 자원을 놓고 국제적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 70억 세계인구 절반 이상이 근대의 물질적 풍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인류의 지속 발전도 위협받는 현재 상황에서 기술이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최신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와 같이 선진국 소비자나 개도국 부유층을 위한 첨단기술이 아닌 저개발 국가의 빈민층까지를 포함한 더욱 광범위한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적정기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다함께.
▲적정기술의 기본 개념은 20세기 초반 인도의 간디로부터 시작됐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적정기술의 기본 개념은 오래됐다. 20세기 초반 인도 독립운동가인 마하트마 간디를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간디는 영국의 방직기가 들어오면 인도의 전통 섬유산업이 붕괴하고 지역 경제가 황폐해지는 암울한 현실에 대응해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물레를 돌려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다녔다. 무작정 근대 산업기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국민의 상황을 고려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긴 했지만 간디의 지역 사회화된 기술에 대한 이러한 시각을 발전시켜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이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E.F. Schumacher)이다.

 

슈마허.

▲적정기술의 선구자 E.F. 슈마허

(1911~1977)<사진=LG경제연구원>

슈마허는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저서에서 근대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 기술은 폭력적이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재생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기 때문에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하면서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기술인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중간기술을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Technology with a Human Face)’로 표현해 인류 복지 향상을 위한 중간기술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또 그는 중간기술 개발그룹(ITDG, Intermediate Technology Development Group)을 설립, 중간기술 확산에 평생을 매진했다. 이후 ITDG에서 중간기술이 첨단기술과 비교되는 것을 피하고 기술에 정치 사회적 의미를 포함하고자 중간기술을 ‘적정기술’로 재정의했으며 이 개념은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적정기술이 등장한 이후 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미국의 NCAT(National Center for Appropriate Technology)와 같이 각국 정부와 NGO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 MIT, 스탠포드와 같은 학교에서도 강좌를 열어 학생들에게 적정기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ITDG가 새롭게 이름을 바꾼 Practical Action, 국경 없는 공학자(EWB, Engineers Without Borders), IDE(International Development Enterprise), D-REV(Design Revolution), KickStart 등등 다수 전문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최근 11월 ‘R&D 36.5℃ 전략’에서 저개발 국민을 위한 적정기술의 개발·보급 및 확대를 발표했고, 민간부문에서도 학계와 NGO를 중심으로 적정기술 포럼 및 컨퍼런스 개최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

 

다시금 주목받는 ‘적정기술’

 

기부.
▲전 세계 저소득층은 40억에 달한다.

적정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적정기술이 등장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널리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다. 게다가 고속성장을 이뤄온 지난 수십 년간 최첨단 기술의 그늘에 가려 적정기술에 쏟아지는 관심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복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친환경 그린 기술이 주목받으며 IT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기 쉬워지면서 적정기술이 다시금 주목받는 중이다.

 

우선 경제 악화로 사회 양극화 이슈가 부각되면서 사회적 나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적 빈곤 상황에 처하는 사람이 늘면서 고속 성장 시에는 잘 보지 못했던 주위의 소외된 이웃을 둘러보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기존 시스템의 불합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사회적 책임과 나눔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 같은 용어가 이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도 달라진 사회적 기대와 요구 수준에 맞추고자 복지예산과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관심이 선진국 저소득층을 넘어 글로벌 BOP 계층으로 확산되면서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게 된 것이다.

 

둘째로 그린기술의 부상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증가시켜 각종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는 물론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여겼던 원자력까지도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 문제가 존재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와 같이 자원을 덜 사용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친환경 녹색기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무분별한 자원 소모 문제도 심각하다. Global Footprint Network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지구인이 현재 미국인의 소비 생활수준을 영위한다고 가정할 때 4.4개의 지구가 필요할 정도이다. 따라서 그린기술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적정기술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있다. 실제로 OECD는 적정기술을 친환경기술(Environmentally Sound Technologies)과 직접 연관시켜 정의하고 있다.

 

셋째로 IT 기술 발전을 들 수 있다. 적정기술 제품들을 개발하려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과학적 이론이나 최첨단 기술보다는, 저렴하고 특정 환경에 맞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스미소니언 연구소는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 책에서 ‘전 세계 90%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구매력을 갖춘 전 세계 10%의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 한다’고 주장했듯이 적정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세계 곳곳과 연결되고 스마트폰, SNS 사용이 늘어나는 지금이 적정기술 확산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적정기술 개발에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활용하거나 적정기술 보급을 위해 웹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정기술 거래 사이트인 Kopernik는 웹을 통해 적정기술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료=LG경제연구원·정리=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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