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 칠드런.

▲적정기술의 미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도국 현장에 꼭 맞는 유용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사진=세이브더칠드런>


과학 기술을 통해 개도국 저소득층의 복지 증진과 지역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적정기술이 사회 양극화 확대와 IT 기술 발전으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적정기술은 무엇보다도 개도국 현실에 맞는 제품 개발이 중요하다. 적정기술은 기업 CSR과 역혁신(Reverse Innovation)의 실마리로도 활용될 수 있다. <편집자 주>

 

적정기술의 앞날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개도국 빈곤층에 대한 여타 경제지원 정책과 비슷하게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각국이 자국의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면 그나마 유지돼왔던 적정기술에 대한 지원과 관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게다가 외부 지원은 과시적 성격이 강하고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어느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우물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집을 어떻게 유지보수 하는가보다는, 우물을 몇 개 파고 집을 몇 채 건설했는지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이다.

 

적정기술 교육 및 사업화 필요

 

그렇다면 적정기술의 미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개도국 현장에 꼭 맞는 유용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제품 제작 시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지만 적정기술에서는 특히 강조돼야 할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적정기술 제품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진국에 거주하고 있어, 전기와 물은 물론 제품 제작을 위한 일반 부품도 구하기 어려운 열악한 현지 상황을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하수 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는 위생상 수세식 화장실이 아무리 좋아도 재래식 화장실이 유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되도록 현장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제작과 유지보수가 편하게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폴.

▲‘Out of Poverty’의 저자로 적정기술

확산에 앞장서 온 Paul Polak.

<사진=LG경제연구원>

또 가격도 개도국 빈곤층의 소득 수준을 고려해 최대한 낮춰야 한다. 단순 기부 형식을 벗어나, 제품 가격이 현지인들이 제품 효용을 고려해 구매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정도가 돼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Nicholas Negroponte 교수의 주도 하에 OLPC(The One Laptop per Child)가 내놓은 100달러 노트북 XO-1은 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춘 제품으로 평가됐지만, 인도 정부가 보기에는 100달러도 현지인에게 다소 비싸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10달러짜리 태블릿 Aakash를 별도로 개발하고 있다. ‘Out of Poverty’의 저자이고 IDE, D-Rev을 설립해 적정기술 확산에 수십 년을 앞장서 온 Paul Polak도 적정기술이 처한 이러한 상황을 2010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The Death of Appropriate Technology I: If you can’t sell it don’t do it’의 글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적정기술의 많은 실패사례가 현지 구매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가격의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많은 적정기술 기관들은 개도국 현장에 맞는 제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적정기술 교육과 사업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적정기술 제품의 유용성을 널리 전파해 지속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외부의 도움 없이도 적정기술이 자생할 수 있게 현지인들에게 제품 판매와 관리를 맡기는 것이다. 일례로 적정기술 기관인 KickStart는 현황 분석(Identify Opportunities), 제품 설계(Design Products), 공급망 구축(Establish a Supply Chain), 시장 형성(Develop the Market), 성과 측정(Measure and Move Along) 방법을 통해 적정기술을 확산시키고 있는데, 제품 설계 이후 과정으로서 지역 사업화에도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ickStart의 물펌프 Super Moneymaker를 통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KickStart는 100달러인 Super Moneymaker가 아프리카 현지 농민에게는 다소 비싼 편이지만 장기적으로 수확량을 증가시켜 농가 수입을 10배 가까이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구입할 가치가 있는 제품이라고 지역 사회 교육과 제품 홍보에 노력하고 있다.

 

CSR과 분산형 인프라 제품 Testbed로 활용

 

아프리카 어린이.

▲Freeplay Energy사는 MP3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LifePlayer를 개발해 아프리카 시골 어린이들의 교육에

 도움을 주고 있다.<사진=LG경제연구원>

적정기술의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와 NGO의 지원 이외에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개도국 저소득층의 복지 증진에 적정기술을 활용하는 많은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사기업에서도 적정기술을 CSR 또는 분산형 인프라 제품의 Testbed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적정기술을 활용한 기업 CSR 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010년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글로벌 표준 가이드라인 ISO 26000이 발표된 이후 CSR은 이제 기업의 의무 사항으로 발전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마이클 포터가 기존 CSR을 한 차원 넘어서서 이익 극대화와 사회적 가치 창조를 동시에 창출하는 공유가치창조(CSV, Creating Shared Value) 개념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기업과 사회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적정기술은 중요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대용 전자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영국의 Freeplay Energy사는 UNDP와 손잡고 사람이 수동으로 충전할 수 있는 라디오 Lifeline을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이를 더욱 개량해 라디오뿐 아니라 MP3 파일도 들을 수 있는 Lifeplayer도 내놓은 상황이다.

 

적정기술을 활용한 기업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참여도 기업이 생각해볼 항목이다. 2010년부터 우리나라는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회원국으로서 원조 공여국이 돼, 2010년 국민총소득(GNI, Gross National Income) 대비 0.12% 수준인 ODA 비율을 2015년까지 0.25%로 증가시킬 계획이다. 적정기술은 ODA의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는데, 일례로 독일기술협력공사(GTZ, Gesellschaft fuer Technische Zusammenarbeit)에서는 적정기술을 활용한 다수의 ODA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ODA 확대에 발맞추어 ODA와 기업 CSR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한 민관협력모델(PPP)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에 상응해 기업에서도 적정기술의 가능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적정기술은 신제품 개발의 Testbed나 역혁신(Reverse Innovation)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개도국 현실에 맞춰 개발한 적정기술 제품을 선진국에 판매하거나,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특히 물, 전기, 통신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개도국 상황을 반영한 분산 및 독립형 인프라 제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Vestergaard Frandesen사의 라이프스트로는 상수시설이 없어 흙탕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개도국 주민을 위해 개발됐지만, 여행자의 비상 용품 및 긴급 재난 시 구호 제품으로 선진국에서도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밖에 태양전지를 이용한 소규모 발전시설과 가로등, 분뇨를 발효시켜 퇴비로 활용하는 생태 화장실 등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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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에 대한 단순 관심을 넘어서 체계적 시스템을 통한 지속적인 지원과 사업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체계적 시스템 통한 지속적 지원 필요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it all)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초고속 무선 인터넷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선진국 주민의 다른 편에는 아직도 물과 전기도 공급받지 못한 채 외부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개도국 빈민층도 많은 상황이다. 이 틈을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적정기술이다. 적정기술은 선진국에서 더는 쓰지 않는 낡은 기술이 아니라 개도국이 처한 현실을 철저히 반영한 기술로서, 단순 경제 원조를 넘어서 과학기술을 통해 지역사회를 개발하고 개도국의 내적 역량을 강화시켜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단기 수익 창출에 힘쓰는 기업이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정부로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적정기술에 대한 단순 관심을 넘어서 체계적 시스템을 통한 지속적인 지원과 사업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료=LG경제연구원·정리=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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