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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은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가 활동한 곳이라 익숙한 나라 이름이다. 남수단은 수단과의 오랜 내전 끝에 독립을 선언해 2011년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 후에도 부족 간 충돌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등 평화는 요원하다. 최근에는 ‘미스터 수단’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수단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남수단 정부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멈춰야 한다고 시위를 하다 체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료제공=세이브더칠드런, 정리=김경태 기자>

 

스물 두 살 젊은 엄마인 알루앗 (Aluat Bol)은 독립 이후 피난 생활을 끝내고 남수단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어린 나이이지만 여섯 살인 첫째 가랑(Garang Wiik)부터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까지 모두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오랜 내전은 끝났지만 알루앗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 전쟁을 하는 동안 땅을 돌보지 않은 탓에 농사를 짓기 어려운데다,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마을로 돌아오면서 식량과 식수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시장에 식량이 있다고 해도 소득이 거의 없으니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마을에서 현금지원 (cash transfe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알루앗 가족처럼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옥수수나 밀가루 같은 식량이 아닌 매달 3천~5천원 정도의 현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식량을 지원하면 끼니만 때우고 말지만 현금을 지원하면 알루앗의 필요에 꼭 맞게 돈을 쓸 수 있으니 그 효과가 더 크다.

 

“현금을 받는 것은 큰 도움이 돼요. 매달 3천원 정도를 받으면 주식인 소검(Sorghum)과 옥수수 가루를 살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아요. 한 달에 두세 번은 고기와 달걀도 먹을 수 있고요. 또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약도 사줄 수 있어요”

 

가난 1.
▲알루앗 가족은 지원금 3천원 가운데 70%를 식량 구입에 사용한다.<사진=세이브더칠드런>

3천원으로 한 달 생활을…

 

세이브더칠드런은 에티오피아, 케냐, 니제르 등에서 실시한 현금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해보았는데 그 결과도 알루앗의 경우와 비슷했다. 빈곤층은 매달 지원 받은 3천~5천원 가운데 70%를 식량 구입에 사용한다. 옥수수나 밀가루 외에도 우유, 고기, 달걀 등을 살 수 있으니 영양개선 효과가 크다. 나머지 30%는 아이들의 학교 등록금, 교복이나 교과서 구입, 의료비, 농업 투자 등에 골고루 쓰인다. 이처럼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는 한편 교육이나 농사 등에도 돈 일부를 투자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빈곤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반면 우리가 ‘현금’ 지원하면 가장 먼저 우려하는 알코올 구입이나 도박 등에 돈을 쓰는 경우는 거의 보고되지 않는다. 현금지원의 수혜자를 남성보다는 여성, 특히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알루앗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매달 80 SSP (남수단 화폐 단위, 한국 돈으로 약 3천원)를 받으면 60 SSP는 먹을 것을 사는 데 쓰고 20 SSP는 아껴서 다른 데에 써요. 비가 새는 초가지붕을 고치기도 했고요, 염소도 한 마리 샀어요. 수확기에는 곡물을 적게 사니까 돈을 모아서 닭을 사려고 해요. 그럼 나중에 지원이 끊긴다고 해도 가축을 팔아 식량을 살 수 있잖아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루앗은 돈을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나눠 쓴다. 또한 현금 지원 프로그램의 효과는 생계 그 이상으로까지 확산된다.

 

“큰아이 가랑(Garang Wiik)은 우리 마을에 현금지원 프로그램이 생긴 후로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는 임산부라 참여하지 못하지만 현금지원을 받는 다른 주민들이 그 조건으로 공공근로에 참여해 학교를 지었거든요”

 

가난 2.

▲현금 지원은 아이를 가진 여성으로 자격을 제한하기 때문에

 알콜 구입 등의 부작용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생계 지원 이상으로 확대

 

알루앗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느껴지는가? 식량원조와 달리 현금지원은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금이며 이 돈을 어떻게 쓸지도 외부의 구호 기관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매달 3천~5천원 정도의 적은 돈이지만 안정적으로 소득이 생기면 빈곤층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 작은 돈을 쪼개서 지붕을 고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염소를 사는 알루앗처럼.

 

이 같은 현금지원 프로그램의 빈곤 감소 효과는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 (Bolsa Familia) 프로그램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일정한 조건을 걸고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저소득층에 매달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원했다.

 

현금을 무조건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자녀의 학교 출석률이 75%를 넘을 때만 지원하거나 영유아에게 필요한 필수 예방접종을 마쳤을 때만 지원하는 이른바 ‘조건부’ 현금지원 프로그램으로 수혜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을 이끈 것이다. 그 결과 학교 출석률을 높이고 아동 영양실조는 45% 퍼센트 줄이는 등의 효과를 낳으며 주목을 받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동아프리카 식량위기를 겪는 니제르와 소말리아를 비롯한 지역에서 긴급구호식량원조와 더불어 현금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현금지원은 식량위기와 굶주림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전 세계의 식량 위기와 영양실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빈곤층이 대부분인 소농을 지원하는 농업 투자를 늘리는 한편, 소수 곡물 기업이 장악한 세계 먹을거리 유통 체계를 보다 평평하게 해나가야 한다. 이런 노력과 함께할 때 현금지원 프로그램과 긴급 구호는 빈곤층의 위기 극복을 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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