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하천 패러다임은 감성 중심으로 변모할 것

재해예방 위한 치수와 생태보전은 공존 가능해

 

이삼희 박사
[환경일보] 국내 생태하천 1호로 유명한 양재천. 수많은 지자체가 벤치마킹한 양재천을 기획하고 만든 이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하천 전문가인 이삼희 박사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는 임진강 비무장지대 지뢰밭을 상류부터 하류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눈으로 확인할 정도다. 기후변화에만 관심이 집중돼 전통적 환경은 소홀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시점에서 이 박사를 만나 우리나라 하천의 특성과 재해대처 방안 등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 주>

 

한강 하구 물가에 섬이 생겼다. 모래톱도 있어 새도 날아들며 심지어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삼희 박사는 “다소 부자연스런 현상도 있다”라고 진단한다.

 

김포 제방 붕괴는 장항습지 육역화 때문

 

대표적으로 장항습지가 이러한 형상이다. 예전에는 토사들이 쌓여도 홍수가 나면 함께 떠내려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밀물에 실려온 뻘이 쌓이는 등 모래톱이 쌓이고 깎이는 일을 거듭 반복했다. 하지만 움직이던 모래톱이 장항습지로 고정되면서 하류로 흘러가지 못하고 이곳에 토사가 일방적으로 쌓이기만 한다.

 

이 박사는 “감조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오리떼가 사라지고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이 자라고 있다. 여기에 일부 천연기념물이 생기니까 자연스럽다, 생태계가 건강해졌다 표현하지만 이는 겉보기 자연”이라고 말했다. 하천에 육상에서나 자라는 동식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생태계가 왜곡되는 ‘육역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원래 하천 모습이던 ‘수역’이 점차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 콜로라도강을 위해 그랜드캐니언 댐에서 일시에 인공홍수를 방류시켜 이러한 육역화가 진행 중인 지역을 없애버린 사례도 있다. 이 박사는 “밤섬의 버드나무가지가 찢기고 개개비 집이 떠내려가도 일시적으로 파괴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후에는 종의 경쟁이 시작되며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라며 “겉보기에 좋은 것과 실제로 생태적으로 건강한 것과는 매우 다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렇게 하천의 흐름이 막히면 엉뚱한 곳에서 범람이 일어나거나 시설이 파괴되기도 한다. 김포 쪽 제방 안쪽이 계속해 무너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생태하천 1호 양재천의 최초 기획자

 

연구실1.

▲연구실 한켠에 있는 각종 돌과 흙들. 이 박사는 “이것들 하나마다

하천의 역사와 생태가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생태하천 1호로 꼽히며 수많은 지자체가 벤치마킹했던 서울의 양재천은 바로 이삼희 박사의 작품이다. 생태하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라 서울시를 포함한 하천관리자들은 물론 주민들도 거부감을 표시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서울시에서도 ‘가치 없다’며 문전박대당한 이 박사가 직접 찾아간 곳이 강남구청이었다.

 

구청장 면담과 2차례 시민공청회를 거쳤지만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이 박사가 직접 나서 삼성을 통해 민자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도곡동에 111층 건물 2동을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삼성은 이 박사의 연구를 보고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하천에 대한 국내 첫 민자사업의 출발이었다.

 

본래 이 박사는 양재천의 하천변을 성토하고 제방을 늘려 대형 지하공간을 조성하려고 했다. 이 박사는 “고층빌딩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지하를 통해 이동하고 하천변은 ‘슈퍼 제방’으로 만들어 덮개공원을 만들어 녹지화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하천관리지침에 이삼희 박사 연구 반영

 

이는 양재천, 탄천이 한강 모래 자갈을 쌓아둔 곳이고 대홍수 때 물이 넘쳐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2차선 도로가 지하 4차선이 되고, 그 위를 녹지로 조성하면 영구적으로 한강물이 범람해도 도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이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양재천 생태 정비를 하던 도중 IMF가 터졌고 주민 보상 문제가 불거져 결국 삼성은 양재천 사업을 포기하고 강남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 박사는 “만약 순조롭게 추진했다면 최초로 하천과 지역이 연계하면서 생태기능과 치수기능을 일체화한 사업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아울러 이 박사는 “양재천은 유학 가기 전에 추진한 사업이라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 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양재천은 도시에 있다. 도시인들에게 자전거 탈 기회를 준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어 결국 추진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양재천의 성공사례를 전국적으로 벤치마킹하면서, 하천변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자전거길이 생겼다.

 

양재천2.

▲변모한 양재천의 모습. 이삼희 박사가 양재천을 바꾸겠다고 결심했을 당시에는 시민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생태하천’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다.<사진제공=서울시>


살아 있는 하천이 ‘안양천’

 

유학 이후 이 박사는 ‘보기 좋은’ 하천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천’을 조성했다. 이 박사는 “안양천은 겉보기에는 별로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라고 말했다. 안양천 특히 학의천은 바닥이 움직이는 하천, 그야말로 살아있는 도시 하천이라고 한다. 이 박사는 “생물 한 마리 살지 않던 하천이 서울로 들어오는 하천 가운데 가장 깨끗한 곳으로 변모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하천사업의 성공 요인에 대해 이 박사는 “무엇보다 책임지고 수행할 공무원의 적극적인 의지와 지자체장의 열정적인 지원”이라고 말했다. 당시 강남구청 이광세 주무관, 안양시 권순일 주무관은 모험적인 사업을 추진하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보다는 지역에 도움될 것이라는 판단을 통해 강력하게 사업을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이후에도 승진을 거듭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결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정부 부처가 안양천의 성공사례를 보면서 서로 자기 부처 정책으로 채택하는 등 경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박사의 한강 르네상스는 생활·생물·경제의 회복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 르네상스’의 최초 발제자도 이삼희 박사다.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한 후보가 이삼희 박사에게 공약으로 내세울 아이디어를 요청해 밤을 새워 기획한 결과물이 당시 ‘한강 르네상스 플랜’이다. 당시 모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이 서울시에 그대로 전달된 것이 발단이다.

 

이삼희 박사가 제안한 ‘르네상스’는 각종 개발로 아파트와 도로가 점령한 한강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생활 르네상스’이다. 또한 양재천처럼 인간 외 생물에도 살아갈 권리를 주는 ‘생물 르네상스’와 제2의 한강 기적과 같은 ‘경제 르네상스’를 만드는 것이다.

 

하천의 모양은 재정규모, 사회적 요구, 생물가치 등이 반영되면서 변화해 간다. 이 박사는 “하천에 무엇을 얼마나 채울 것인지, 내용도 중요하지만 담는 그릇 자체도 중요하다”라며 “하천을 잘못 관리하면 후대에서 욕을 얻어먹을 것이고 가치와 혼을 담는다면 100년 후, 200년 후에는 고려청자처럼 하천이 유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박사는 “처음 발제할 때는 새빛둥둥섬이나 반포분수 등의 개념은 없었다. 이 아이디어는 서울시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별도 공모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한강은 서울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민족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한강을 통해서 남북문제를 풀어보자는 뜻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일부 변질된 한강 르네상스는 시민들의 질타를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시아의 하천을 부러워 하는 것은 급격한 수위 변화로 인한 다양한 서식환경 때문”

 

재해관리 방식 바꿔야

 

안양천(예전).

▲1960년대 BOD 7.7㎎/ℓ으로 맑았던

안양천은 1984년 BOD193㎎/ℓ으로

동·식물이 폐사할 정도로 수질이 악화

됐다. <사진제공=이삼희 박사>

홍수 관리 차원에서도 이 박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곤란하다며 “우리는 일방적으로 댐을 만들고 제방만 쌓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재해예방을 위한 치수와 생태는 대립하는 개념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유량이 급격히 증가했을 때 이를 하천변에 많이 가두면 홍수를 예방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환경이 조성돼 종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등 해외 전문가들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하천을 부러워하는 것도 급격한 수위 변화 때문에 다양한 서식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결과 이제는 물을 빨리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늦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 이 박사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큰 홍수를 다스릴 수 있는 여력이 증가하고, 평상시에는 하천 생태계를 보전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홍수 물이 천천히 흘러가게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기존 하천설계기준으로 대응 불가능한 사방하천

 

이 박사에 따르면 하천법만으로 관리할 수 없는 또 다른 특징이 하천에 있다고 한다. 하천이 산에서 내려오면 작은 돌이 앞에 쌓이고 큰 돌이 뒤에 따라오는데, 경계선을 기점으로 작은 돌이 뒤에 따라오는 경우가 생긴다. 이 박사는 “산사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중력이 유체력보다 크다가 이것이 역전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동해에 큰 홍수가 발생했을 때 이 박사는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고 “잘못 해석하면 재해를 항상 안고 살게 된다. 이를 일본에서는 계류하천 혹은 사방하천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현재의 하천설계기준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안양천 왜가리.

▲왜가리가 다시 돌아온 안양천. 2011년 이후 안양천은 다시 5.8㎎/ℓ로 수질이 좋아졌다.

<사진제공=이삼희 박사>


물을 가둬 홍수 막는 광역하도

 

이 박사는 “유학 시절 은사께서 ‘한국은 컴퓨터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내 눈으로 현장에서 확인한 것이 아니면 이야기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한 가르침에 충실한 탓인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임진강 비무장지대 상류에서 하류까지 지뢰밭을 헤집고 조사한 유일한 이가 바로 이삼희 박사다.

 

또한 반복해서 범람하는 하천의 문제점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문제점을 찾아낸 것도 이삼희 박사다. 제방이나 하천협소부로 인해 유속이 줄지 않아 홍수가 나면 하천 생물과 모래, 자갈 등이 모두 쓸려가 하류에 집중적으로 쌓이는 곳이 적지 않다. 이로 인해 또 범람이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박사는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 예가 낙동강 구미 해평취수장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취약한 곳이 많아서 빨리 찾아내서 현재의 ‘협의 하도’를 ‘광역 하도’로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본래 우포에 자연습지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를 확대시켜 천변저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천변저류지가 홍수 시에 물을 가두어 홍수 물을 가두거나 강바닥 모래 이동을 줄이는 역할을 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박사가 말하는 ‘광역 하도’ 개념이다. 일본 정부의 하천관리지침을 보면 특별히 이삼희 박사의 연구결과가 실려 있다.

 

아울러 그는 “하천이 침식되는 것은 지나치지 않으면 내버려둬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이 연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창원 용호늪을 우포를 능가하는 습지로 만들어 생태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부산 지역에 큰 규모의 홍수가 났을 때 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천변습지.

▲이 박사는 천변저류지를 활용해 홍수에 대비하지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제공=이삼희 박사>


홍수 관리 위해 물은 천천히 흘러 늦게 빠져야

 

또한 이 박사가 하천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제방을 높이 쌓지 말자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일본은 홍수가 나는 지역에도 홍수터가 있어 물이 들이닥치는 속도가 잔디가 감당할 수 있으면 블록을 쌓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에 이르러 제방을 덧쌓기는 하지 않고 홍수위가 일정 이상이 돼 하천 너머로 월류해도 안전한 제방축조 기술을 개발한 상태다. 제방이 완전히 파괴되면 엄청난 피해가 생기지만 월류해도 제방만 온전하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물이 제방 뒤로 넘어가도 제방이 물속에서 버텨주면 넘어가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아, 붕괴했었을 때와 비교하면 수해복구가 쉽다”라며 “물론 이런 제방기술에 돈이 필요하겠지만 초기투자비용은 그리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하천이 육지와 접하는 면이 들쭉날쭉하고 경사가 지면 홍수가 왔을 때 물살을 막아 운동에너지를 줄인다. 이 박사는 “앞으로 홍수 에너지를 꺾는 ‘물골’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이를 적용한 것이 한강 암사지구 생태공원인데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홍수터에 뻘이 쌓여도 물이 빠지면서 다시 뻘을 도로 가져가 육역화 문제가 많이 줄어든다. 아울러 물고기가 피할 곳이 생겨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고 보기에도 자연스럽다. 이 박사는 “갯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옛날 하천을 보니 모두 이러한 구조였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 박사는 하천 내 나무심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천변 갯버들이 너무 많으면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하천의 건천화를 촉진할 수 있다. 그래서 강바닥에 나무가 많은 도시지역은 건천화가 더 빠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박사는 사막에 나무 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사막지대에 나무가 많으면 지하수를 많이 뽑아서 증발시켜 사막화를 가속할 수 있다. 초원지대를 만들어 보습효과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삼희 박사는 “하천을 대하는 시각이 예전에 치수 우선이었다면 최근에는 생태를 토대로 역사 문화 옮겨가는 상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앞으로는 감성 기능이 강조될 것으로 생각한다. 시민들에게 하천이 감성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홍수로부터 안전이 전제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담=김익수 편집국장, 정리=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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