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하우스개념도.
▲패시브하우스는 고단열, 고기밀 등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90% 이상 줄여준다.

[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2011년 1월, 환경운동연합 회원이었던 이병우 씨는 서울 이태원동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허물고 주택을 신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평소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패시브하우스를 짓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여기에 빗물 재활용, 음식물 처리실, 옥상 녹화 등을 추가해 평소 꿈꾸던 집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주택 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들의 의견도 제각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구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대부분 독일 등 해외 사례에 불과했다.

 

이병우.

▲환경운동연합의 이병우 회원은 패시브

하우스를 지을 계획이었지만 부족한

정보와 인프라 및 지원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진=김경태 기자>

패시브하우스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단열을 위해 독일산 단열블록을 주 단열재로 선택했지만 업체는 단순하게 수입만 할 뿐 기술적인 역량이 없었고 제대로 시공하려면 독일에서 본사 기술자를 섭외하는 길밖에 없어 단열부문에 필요한 비용만 1억원이 넘었다.

 

국산 단열블록도 고려해보았지만 기술검증이 어려워 결국 포기하고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열재보다 3배 정도 두터운 단열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집짓기 프로젝트의 절반을 개인이 단열재를 검증하는데 허비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집을 짓고 1년간 생활한 이병우 씨는 “실제로 살아본 결과 절반의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애초 목표로 했던 패시브하우스가 아닌 저에너지 주택에 머무르고 말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난방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에너지 90% 절감 ‘패시브하우스’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선언하면서 산업 부문보다 상대적으로 줄이기 쉬운 건축물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영국 등에서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패시브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커지고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고단열 재료로 외피를 기밀하게 구성하는 원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내부의 따뜻한, 혹은 시원한 공기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꽁꽁 둘러싸고 열교환기를 통한 환기로 열 손실을 극도로 줄인 형태의 집을 말한다.

 

전체사진.

▲패시브하우스를 짓거나 주택을 개조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비용이 신재생에너지보다 싸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단위면적(㎡)당 1.5ℓ의 냉·난방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이를 다른 건축물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물 형태인 유리커튼월 건축물은 40ℓ, 2001년 이전 국내 주택이 30ℓ, 2001년 이후 국내주택은 17ℓ, 저에너지 건축물, 독일 건축물 설계 기준은 7ℓ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다시 말해 패시브하우스는 기존 주택보다 에너지 소비량을 90% 이상 줄인 집이다.

 

패시브하우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신재생에너지를 투입해 기존 주택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훨씬 싸기 때문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도입이 제한적인 국내 여건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국내 패시브하우스 보급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서 이병우 씨의 사례에서 보듯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이 매우 적고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도 제한적이어서 핵심소재는 불가피하게 수입해야 한다. 아울러 시공 기술이 없어서 이를 따라하려면 외국에 직접 가서 배우거나 외국 기술자를 초청하는 수밖에 없다.

 

독일보다 30년 뒤떨어져

 

지난 8월30일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패시브하우스 사례발표에서 세명대학교 이태구 교수는 “한국의 에너지효율 1등급 주택이라고 하면 좋아 보이지만, 독일에서는 80년대 중반 건설된 주택 기준에 해당하며 현재는 에너지소비량 기준을 1/3로 줄였다”라며 “독일에서 패시브하우스를 지으면 기존 건설비보다 5~7% 많이 들지만 5만 유로(약 7100만원)를 1.5% 저리에 20년 상환조건으로 빌려준다”라고 설명했다.

 

이태구 교수.

▲세명대 이태구 교수는 먼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나머지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독일은 신규 주택 건설 지원과 함께 기존 주택의 에너지소비효율을 높이는데 2조5천억원을 투자해 100만호를 개축했으며 영국 역시 1400만 가구를 대상으로 한 단열공사인 그린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영국은 2015년부터 에너지소비 효율 등급이 낮은 주택은 아예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태구 교수는 “먼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럽은 절약 부문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패시브하우스를 짓기 위한 고효율 단열, 기밀, 창호 등은 일반제품보다 비싸지만 지원이 전혀 없어 집을 짓는 사람이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수요가 거의 없어 고효율 단열제품 등의 생산 역시 극히 제한적이거나 아예 생산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지경부가 온통 독점

 

양이원영 국장.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국장은 에너지

 효율등급제를 최저등급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건축물 부문 온실가스 절감을 위해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을 제정해 내년 2월부터 시행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효율등급, 에너지사용량 등 건축물의 에너지 정보를 증명서로 발급해 부동산 거래 시 활용하는 에너지 소비증명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를 추진하고자 국토해양부에 녹색건축과를 신설하고 ‘건축물 패시브 디자인 가이드라인’, ‘에너지절약을 위한 창호설계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배포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필요한 금융지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실정이다. 국토부 박기범 사무관은 “국토부가 관련 예산을 신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도 지식경제부 에너지국의 예산을 가져다 쓰는 형편”이라며 “우리는 유럽과 달리 4계절이 뚜렷한 만큼 단계적으로 에너지효율등급을 단계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가 나서서 공공건물부터 패시브 건축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국장은 “용산구청 등 공공건물을 보면 유리로 외벽을 만들어 에너지효율이 매우 떨어진다”면서 “현재의 에너지 효율등급제를 최저등급제로 바꾸고 공공건물은 의무적으로 저에너지 건축물로 만들어야 수요가 생기고 관련 산업이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mindaddy@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