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가 아닌 생태복원학자가 만든 최초의 생태연구원

척박한 국내 현실 탓에 지구 한바퀴 돌아 전시자료 확보

 

추진단장.

▲눈발이 휘날리는 날 국립생태원을

찾았음에도 이창석 단장은 생태원

곳곳을 안내하며 그가 의도했던 것들을

설명했다.

 

[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와 적응 연구, 생물종 확보 및 보전, 생태교육과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100만㎡ 규모의 국립생태원이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에 완성됐다.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의 국립생태원을 미리 찾아가 이창석 건립추진단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이창석 단장은 공사 공정률이 고작 1%에 머무르고 있을 때 추진단장으로 취임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제가 왔을 때 갯벌 터파기를 할 때였다. 추진단장으로 왔으면서도 ‘이곳이 만들어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했던 그가 국립생태원 추진단장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정권에 잘 보인 ‘소위 낙하산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언론에서는 ‘4대강 찬성론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심지어 야당의 모 의원 블로그에는 ‘비전문가가 MB 정권 보은인사로 내려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생태학자는 발로 뛰어야 한다

 

반면 평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걱정했다. ‘생태학자는 발로 뛰어야 한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가 정부 일을 하는 것을 우려 섞인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창석 교수를 국립생태원 추진단장으로 일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명성이나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가족들은 안정적인 교수직을 잠시 그만두고 연봉도 낮고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국립생태원 추진단장직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가 단장직을 결심하게 한 것은 자신의 힘든 경험이었다. 이창석 단장이 생태학을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 처음 취직한 곳이 산림과학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생태학을 공부한 사람이 갈 곳은 연구기관 외에는 거의 없었다. 당연히 관련 학과를 나온 사람들은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이 단장은 “국립생태원이 제대로 자리매김한다면 나와는 달리 후배들의 취업 걱정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라며 “전공이 복원이라 ‘모든 것이 만들어진 후에는 반드시 복원이 따른다’라는 생각으로 생태원 추진단장을 맡게 됐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복원생태학에 대한 개념을 학문적으로 바르게 정의 내리는 것. 그는 복원생태학 학자들이 너무 적은 것을 항상 걱정하며 “학회지나 논문발표 등에 제시된 논문 숫자를 보면 우려스러울 정도로 너무 적다”라고 말했다.

 

에코리움 열대관.
▲상설전시관인 에코리움 열대관. <사진제공=국립생태원>

복원생태학 개념 바로잡아야

 

아울러 그는 “1990~1년 사이 월간동아에 21세기 한국을 이끈 생태학자에 저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실렸는데, 그들 중 생태연구를 이끄는 사람으로 남은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한국의 생태연구가 얼마나 뒤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왜 생태학자들이 유망주라고 뽑은 사람들은 왜 뻗어나가지 못하는지 아쉽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국립생태원. 관련 연구도 부족한 마당에 제대로 뿌리 내리려면 당연히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 아울러 생태 연구에 기초를 마련하는 작업인 만큼 연구원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추진단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농부처럼 출근하고 삼성직원처럼 퇴근한다’를 신조로 삼았다. 농부의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비가 내리면 고랑에 물이 넘칠 것을 우려해 살피러 나가야 하고 뙤약볕이 쏟아지면 시원한 에어컨 대신 작물이 말라죽을까 살펴야 한다.

 

그는 “진정한 연구자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순간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 연구실에 불이 꺼지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생태 그리고 복원에 대한 인식조차 마련되지 못한 현실에서 추진되는 국립생태원이 쉬울 리가 없다. 국립생태원에 연구와 전시를 위한 자원 확보를 위해 그는 정말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동·식물 연구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묘목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습지 식물종 중에는 아직 도입하지 못한 종이 있어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엔지니어링 출신이 아닌 생태학자가 추진단장을 맡은 것은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공사의 편의성, 경제성이 우선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생태연구에 초점을 맞춰 공사가 진행됐다.

 

국립생태원 안에 작은 동산 형태의 산을 만드는 것조차 급격한 경사가 마음에 안 들어 그는 다시 만들 것을 지시했다. 경관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국의 생태를 재현하고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전시관.

▲이창석 추진단장과 본지 김익수 편집대표는 2시간이 넘게 곳곳을 둘러보며 생태원 조성

과정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퇴임 이후를 준비하다

 

그의 임기는 2월24일까지다. 그가 당연히 국립생태원장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소식이다. 아니 사실 그는 이미 지난해 추진단장직에서 해임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주위의 조언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며 고위 인사들을 만나 그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 저러한 비난이 계속되면서 정부가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가 우겨서 여기까지 왔다. 자신이 시작한 작업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교수가 30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자신이 평소에 꿈꾸던 연구를 실제로 옮기는 영광을 누려보겠는가?”라는 말로 자신이 맡은 일을 표현했다.

 

실제로 그가 국립생태원 건립을 위해 관련 전문가와 학회에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직접 생태원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직접 찾아오는 성의를 보이는 사람도 없었고 자문위원회는 정족수 미달로 열리지조차 못했다. 그가 소통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생태, 복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그는 “일본생태학회에 가면 2000명이 넘게 참가해 발표를 꼼꼼히 메모하고 경청한다. 아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는 일본의 생태 관심도에 비하면 학회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생태 연구에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라고 한숨을 내쉰다.

 

에코리움 사막관.

▲에코리움 사막관의 모습. 이곳은 사막지대, 극지대를 포함한 다양한 기후의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국립생태원>


재배온실 내부.

▲재배온실 내부. 생태원은 단순한 전시시설이 아닌 생태와 복원을 연구하는 곳이다.

<사진제공=국립생태원>


그러나 지난해 세계적인 생태학자들을 불러모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국립생태원을 보여줬을 때 하나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단장은 “빈말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면 당장 그만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생태는 연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가치를 발현한다’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한다. 발로 뛰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 생태를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생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이 실제 생태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국립생태원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식물원이나 동물원이 아닌 생태원으로 올곧게 서고자 노력했다.

 

국회에서 관련 법률이 통과하지 못해 아직 개장하지 못했지만 틈새를 빌어 그는 생태전문교육강사 양성에 매달리고 있다. 그가 추진단장에서 물러나 생태원장으로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내려오더라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얻어갈 것이 필요하고 올바른 연구 여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펭귄.
▲극지관의 펭귄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수 시절보다 더 많은 강의

 

그래서 그는 대학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국립생태원에서 매일 무료로 강의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립생태원 교육해설’이라는 이름의 교과서도 집필하고 있다. 모두가 그가 떠나고 나서도 국립생태원이 제대로 서기 위해서다.

 

그는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과연 어디에서 무얼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생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무얼 배워야 하는가? 환경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진짜 환경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가 말하는 생태는 소통이다. 생태야말로 인간이 자연과 소통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는 환경은 나빠진 것을 되돌리는 산업이 아니라 건강성을 회복해 자그마한 오염쯤은 치유력으로 되돌릴 수 있는 튼튼한 자연이다.

 

에코리움 야경.
▲국립생태원은 언제 문을 열까? 해답은 국회가 갖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생태원>

<Tip>

국립생태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 및 적응 연구, 생물종 확보·보전, 대국민 생태교육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건립됐다.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일원에 99만8천㎡ 규모로 조성됐으며 국립생태원 본관, 생태교육관, 복원생태관, 방문자센터 등으로 구성됐다.

 

주 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에코리움은 전시온실(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으로 나뉘어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으며 연구를 위한 재배실과 치료, 멸종위기종 복원 공간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아울러 관람객을 위한 생태전문교육강사가 있어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의 다양한 생태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해설을 들으며 천천히 둘러본다면 대략 3시간 정도가 필요하며 생태원 내부에는 놀이터, 카페, 4D 상영관 등 다양한 부대시설도 있어 어린이와 함께 찾기에 좋다. 특히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학생들의 수학여행이나 단체학습에도 적당하며 내년 봄 개원 예정이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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