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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빠르게 확산돼 초동대응 늦어지면 피해 커져

화학사고 대응주체를 환경부로 일원화 필요

   

윤이(1)
불산이 또 누출됐다
.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로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입원 치료 중에 있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또 화학물질 사고라고 한탄한다. 우리나라는 2012년 에틸렌 연간 생산량이 세계 5위의 화학 강국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에너지·화학 산업의 틀에서 벗어나 정밀유기화학, 반도체, 나노·무기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 범위가 확대되어 새로운 화학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 화학 산업에서 경험하지 못한 고압·고온상태의 가혹한 조건의 생산방식과 유해성이 큰 화학물질의 사용이 불가피해졌다. 기존 설비중심의 단편적 안전관리 방식으로는 대비가 힘든 다양한 형태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화학 산업 구조 변화는 다양한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게 인적·물적 요소가 융합되는 안전관리 방식이나 사전예방에서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 대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 발생했던 일련의 화학물질 사고는 그동안 우리가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게 한다. 지난해 정부는 구미 불화수소 누출사고를 계기로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개선해야 할 점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개선대책에는 사고가 발생하면 평시 해당물질을 관리하는 부처가 대응주체가 되고 소관이 중첩되거나 불분명한 경우에는 환경부로 대응주체를 일원화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화학물질은 빠르게 확산되어 초기피해가 크므로 소관부처 규명 등으로 초동대응이 늦어지는 경우, 대규모 피해 발생 위험이 있다. 따라서 평시 화학물질 관리에 상관없이 화학사고 대응주체를 환경부로 일원화해야 한다.

 

또한 구미 불화수소 누출사고에서 기관과의 현장 공조활동이 잘 작동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책임관계를 성문화한 국가 화학사고 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은 국가재난관리체계의 큰 틀에서 유류 및 유해물질 사고에 대해서는 미국 환경청이 대응주체가 되어 사고를 총괄·조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환경청은 화학사고 국가비상계획(NCP)을 준비하고 관계기관, ·지방정부, 산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능을 조정하여 협력하고 있다.

 

둘째, 화학사고 대비조직 정비를 최우선으로 추진해 실질적인 대응능력을 조기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소방방재청의 화생방(CBRNE) 현장 대처기능 개선과 화학사고 전문 대응을 위한 전담기관을 환경부에 신설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성과와 효율 중심의 업무처리로 근로자나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는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하였다.

 

그동안 수차례 유사한 전담조직 설치가 건의됐지만 경제성 논리와 예산 우선순위에 밀려 진행과정에서 무산됐다. 이번 기회에 조직·기능의 조기 정비를 통해 화학 산업 구조 변화 및 유통량 급증에 따른 사고 발생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 화학사고 예방과 사업장 외부의 주민·환경 영향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종합적인 위험관리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현재는 사업장 내부는 노동부 주관의 공정안전관리(PSM)제도로 관리하고, 사업장 외부는 환경부의 자체방제계획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방제계획은 유사 제도 사업장에 대해서는 면제조항을 두고 있어 사실상 현행 위험관리제도는 내부에 국한된 위험관리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환경청은 최악의 시나리오 영향범위 안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을 때에는 공장건설을 허가하지 않거나 충분한 안전장치를 두도록 규제를 엄격히 하고 있다. 좁은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에 미국의 사례를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누출의 영향이 사업장 외부의 주민건강 및 환경에 위해를 미칠 경우에는 엄격한 위험관리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주민 알권리를 확대·강화해야 한다. 크고 작은 화학물질 관련 사고를 겪으면서 유해화학물질 사업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체는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의 정보나 사고시의 관리계획을 사전에 알려줌으로써 주민의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고 상호 신뢰 구축의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

 

미국 환경청이 비상 계획 및 지역사회 알권리에 관한 법(EPCRA)’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취급정보를 공개하고 지역주민이 직접 산업체의 누출사고 대비 노력을 감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사례를 참고해야겠다.

 

다섯째, 화학물질의 전 생애적 안전관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물질의 특성에 따라 유해화학물질을 구분하여 관리하는데, 이런 경우 소관부처가 애매하거나 중복되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개별법 내에 사고예방, 대비, 대응 등 전 과정에 대한 관리요소를 모두 포함해야 하므로 관리 자원이 중복 소요된다.

 

북미나 유럽의 경우에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하여 규제목적에 따라 기능적인 안전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제도를 기능적인 규제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나 너무 급격한 제도변화는 혼란을 초래하거나 부처 간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기존 개별법의 취약점을 보강하고 개별법 간의 조정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체는 내부의 자발적인 규제정책에 의한 자율중심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최근 사고와 같이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는 명령과 통제방식의 정부개입을 유도한다. 산업체의 성장이 공공안전에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완화를 주장하기 전에 산업체 내부에 안전문화를 안착시키고 아웃소싱이나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또한 기업의 사회적 의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안타까운 피해가 또 발생하였다. 성장과 발전보다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과 연결될 수 있게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안전관리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 이를 위해 정부, 산업체,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박종원  pjw@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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