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대비, 국가 정책에 ‘물발자국’ 도입해야
‘물 인권’, ‘물 평등’ 개념의 접근방식 필요

 

노태호 박사.
▲KEI 노태호 박사 <사진=김택수 기자>
[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노태호 박사는 “발자국(Footprint)을 ‘사람이 활동을 통해 자연에,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물발자국을 통해 과연 물이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는지, 누군가 독점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2000년대 초반부터 물 사용에 대해서도 물발자국 개념을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며 제품 생산의 전 과정(LCA)에서 물이 얼마나 투입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됐다.

 

예를 들어 초콜릿에 대해 물발자국을 파악하려면 제품을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원료가 되는 카카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투입된 물의 양까지 고려해야 한다.

 

원재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과 함께 가공과 운송, 판매 등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물의 양을 계산하는 것이다.

 

아울러 물발자국은 3가지로 나뉘며 이에 대해 노태호 박사는 “녹색 물발자국은 쉽게 말해 빗물이 얼마나 포함됐는지를 말하며 청색 물발자국은 지표수와 일부 지하수를 포함했는지, 회색 물발자국은 공정과정에서 발생한 폐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갔을 때 이를 허용 가능한 농도까지 희석시키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물 수지’가 무역에 큰 영향 미칠 것

 

쉽게 예를 들자면 육류와 곡물류의 물발자국을 비교할 수도 있다. 육류를 생산하려면 가축이 먹는 물에 더해서 사료를 만들기 위한 물 공급이 필요하다. 따라서 같은 양의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 있어 육식이 채식보다 물발자국의 규모가 더 크다.

 

아울러 노 박사는 “물발자국에서 ‘가상수’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정책에 빨리 반영해야 한다”라며 “무역분야에서 앞으로 물 수지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교역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 물품뿐만 아니라 물까지 수입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장미를 수입한다고 가정하면 단순히 꽃만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물 역시 수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수출과 수입을 통해 얼만큼의 물이 유입되고 유출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수출품과 수입품에 포함된 가상수를 비교해보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노 박사는 “물이 귀한 ‘섬’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제주도를 생각해보자. 지하수가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닌데 ‘삼다수’라는 이름으로 ‘물’이 한계를 넘어 육지로 유출된다면 제주도 지역의 지하수가 고갈될 위험에 처한다”라며 “이를 국가 전체 규모로 확대해 생각해보면 ‘물 수지’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물 수지를 전 지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지표면과 바다의 수분이 증발해 구름이 형성되고 이것은 다시 비나 눈의 형태로 돌아온다. 또한 인간의 교역을 통해 인위적으로 물이 순환한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매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가뭄이나 교역중단과 같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세이브더칠드런.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으로 1억5천만명이 절대빈곤 상태에 놓였다.

 아프리카에 화훼단지를 만들어 지하수를 고갈시키는 행위는 물의 약탈이 아닐까?

<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물은 경제재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

 

물발자국을 ‘물 인권’, ‘물 평등’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물을 단순히 경제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물 접근성을 보장하는 ‘공공재’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노 박사는 “물발자국을 살펴보면 과연 물이 공정하게, 평등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라며 “거대 기업의 상수도 민영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노 박사는 아프리카 화훼단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유럽이 장미, 튤립 재배를 위한 아프리카에 화훼단지를 만들어 담수를 모두 고갈시켜버리고 철수했다. 그 결과 정작 아프리카 사람들은 마실 물조차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장미에 담긴 물은 유럽으로 유출된 것이고 이 물이 다시 아프리카로 이동하려면 전 지구적인 순환을 통해 매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물 역시 자원이라고 본다면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자원이 약탈당한 셈이다.

 

물의 중요성에 대해 노 박사는 “나사가 다른 행성을 탐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물의 유무다. 물이 있어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으며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라며 “물을 단순히 경제재로 보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무역에서 물발자국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은 아직 물에 관한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논의될 뿐, 물 공급의 형평성이나 물발자국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노 박사는 “물발자국, 물공급의 형평성 등을 그린ODA에 접목하는 것이야말로 과거 정부가 말했던 진정한 녹색성장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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