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e24557

 

[환경일보] 권소망 기자 = 지난 5월의 마지막 날, 강동구에서 특별한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 아닌, 바로 길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다.

 

고양이는 국내에서 특히 기피의 대상이다. 요물, 혹은 도둑고양이라고도 불리는 길고양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거나 시끄럽게 울어대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

 

반면, 길고양이들을 불쌍히 여겨 먹이와 물을 계속 공급해주는 캣맘(길고양이에게 사료를 먹이거나 자발적으로 보호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동물애호가들은 길고양이의 수호자로서 재산을 아끼지 않고 사료를 줄 뿐만 아니라 아픈 길고양이들을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치료까지 하고 있다.

 

주민들은 사료로 인해 고양이들이 더 몰린다며 캣맘들을 비난하고, 캣맘들은 길고양이도 생명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결국 사료 공급으로 인한 주민들과 캣맘들의 갈등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됐다.

 

결국 주민들은 구청에 계속해서 길고양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강동구청은 놀랍게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내놨다.

 

안락사해도 개체 수 변함없어

 

5월31일, 지역 캣맘으로 구성된 미우캣보호협회와 강동구가 함께 전국 최초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사료와 물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구청에서 승인한 길고양이 급식소는 1년간 시범 사업으로 진행된다.

 

dsc_0150.
▲강동구청에 자리잡은 길고양이 급식소 <사진=권소망 기자>

처음엔 구청과 동 주민센터 18개에 설치됐던 급식소가 2달이 지난 지금 구의회, 수도사업소, 보건소, 소방서, 여기에 8월5일 설치된 경찰서 앞까지 25개로 늘어났다.

 

이 사업은 지난 2월 지역의 캣맘들과 만화가 강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4개월에 걸친 협의 끝에 강풀이 사료그릇 50개와 사료 6톤을 기부해 길고양이 급식소가 시행됐고, 지역 캣맘들은 동별로 담당자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 강동구 지역에는 1500~2000마리의 길고양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급식소 운영으로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반대의견도 만만치가 않았다. 심지어 안락사를 통해 고양이 개체 수를 관리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성공회대 경영학부 박창길 교수(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는 “고양이는 영역을 중요시 여기는 동물이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먹이를 줘서 일정 영역에 머무르게 되면 다른 영역에서의 고양이 유입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오히려 고양이 안락사로 인해 한 지역에 고양이가 사라지게 될 경우 주변 지역에서 고양이들이 유입되는 진공 효과 때문에 고양이 개체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TNR 병행으로 발정음·개체 감소

 

이를 위해 시행되는 것이 바로 TNR 사업이다. TNR이란 Trap-Neuter-Return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그 자리에 방사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TNR을 마친 고양이는 귀 끝을 살짝 잘라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는 표시를 해준다.

 

daum_net_20130807_165116
▲강풀이 그린 TNR 설명 그림 <자료제공=미우캣보호협회>

외국에서는 이미 TNR이 보편화됐다. 서울시에서도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8년 3월1일부터 이 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길고양이 관리방안 개선’에 의하면 로마에서 시행한 TNR로 인해 10년 후 길고양이 개체 수가 22% 감소했고, 미국 플로리다 게인스빌은 30% 감소 효과를 얻었다.

 

주목할 것은 국내사례로, 2007년부터 용산구 한강맨션에서 시행한 TNR 결과, 80~90마리에 이르던 길고양이가 2013년에는 50~60마리까지 줄어들어 약 35%의 감소율을 보이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고양이 한 마리당 잡은 TNR 예산을 약 14만원이라고 밝혔다. 고양이 한 마리 안락사를 위한 비용 10만원과 비교하자면 큰 차이도 없고, 멀리 봤을 때 경제적으로 TNR의 효과가 더 크다.

 

뿐만 아니라 중성화 수술을 한 길고양이는 특유의 발정음을 거의 내지 않아 길고양이 혐오의 주원인인 소음도 없애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출몰 지역을 특정하기 어렵고, 포획에 성공한다고 해도 번식 능력이 떨어지는 약한 길고양이가 잡히는 경우가 많다.

1374651598742_20130724_143620.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

<사진제공=미우캣보호협회>


게다가 국내에서 시행되는 TNR은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에만 출동해 고양이를 포획하고 있어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강동구에서는 이번 급식소 운영을 통해 길고양이 개체 파악과 포획이 용이해져 TNR 사업도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밥을 먹기 위해 모이는 길고양이는 포획하기도 쉽고, 밥을 줌으로 인해 어떤 고양이가 우두머리 수컷인지, 번식력이 우수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강동구청 일자리경제과 이재영 담당자는 “길고양이 급식소로 인해 TNR 홍보 효과가 크다”며 “TNR 수술을 한 고양이들이 오래 살아야 효과를 많이 볼 수 있어 급식소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쓰레기 파헤침 줄어 주민 불만 해소

 

또한 급식소에 오는 길고양이에게 줄 사료를 위한 비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이에 미우캣보호협회는 시범 사업 기간 구의 재정 지원은 배제하고 행정 지원만을 받기로 결정했다. 사료는 강풀이 기부한 6톤의 사료와 함께 협회 회원인 캣맘들이 자비로 산 사료를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사료와 깨끗한 물을 채우는 것도 회원들의 몫이다. 이들은 위생을 위해 사료그릇을 씻고 주변 청소를 하는 등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dsc_0152

▲강동구청 터줏대감 고양이 '하늘이' <사진=권소망 기자>

 

기자가 직접 찾아가 본 강동구청 길고양이 급식소 앞에는 놀랍게도 고양이 한 마리가 계단에 떡하니 누워있었다.

 

강동구청뿐 아니라 성내1동 주민센터, 보건소, 소방서, 수도사업소, 구의회까지 설치된 근처의 모든 급식소에 밥을 주고 있는 미우캣보호협회 회원 이동월씨는 이 고양이를 ‘하늘이’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가까이 가고 둘러싸도 피하지 않던 하늘이는 캣맘이 가까이 가면 오히려 반갑게 맞이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이동월씨의 힘겨운 노력이 있었다. 비가 심하게 쏟아지던 장마철도 하루도 빠짐없이 급식소로 나가 사료와 물을 갖다 줬고, 병든 길고양이를 만나면 사비를 들여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그의 팔에는 고양이에게서 옮은 곰팡이 피부병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dsc_0195

▲이동월씨 팔, 고양이에게서 옮은 곰팡이

피부병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사진=권소망 기자>

그는 “길고양이도 생명”이라며 “사료를 가져갈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힘든 게 다 잊힌다”고 말했다.

 

그 덕분일까. 그가 사료를 주고 있는 성내1동 주민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한식당 점원은 “길고양이 급식소가 생긴 후 고양이들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찢는 일이 줄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자체, 급식소·TNR 홍보 급선무

 

길고양이 급식소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우캣보호협회 김미자 회장은 “고양이를 급식소에 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기 고양이를 포함해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지만, 그 호의에 기댄 사람들이 오히려 고양이를 유기하는 경우도 생긴 것이다.

 

또한 주민들의 민원도 넘어야 할 산이다.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고, TNR과 급식소 효과를 보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창길 교수는 이를 TNR과 급식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길고양이들로 인한 피해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시행하는 TNR과 이를 돕는 급식소를 길고양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홍보를 못한 지자체의 잘못”이라며 “제대로 된 홍보와 교육이 있을 때 주민들의 민원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에게 인내를 부탁드리는 구청과 캣맘의 노고가 필요하기도 하다.

 

법이 바뀌어도 학대는 계속…안타까워

 

dsc_0163

▲길고양이 급식소를 시작한 강동구청. 계단을 보면 고양이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권소망 기자>

 

길고양이는 한때 유해동물(야생조수 및 그 알, 새끼, 집에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로 분류됐으나 2005년 관리 동물로 변경된 이후 현재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길고양이에 대해 포획, 감금, 상해 등 일체의 학대 행위가 금지됐으며 위반 시 과태료와 벌금,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부과한다.

 

강동구에서는 이번 길고양이 급식소 시범사업을 계기로 동물보호조례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 7월10일에는 ‘동물복지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 조례안’ 입법예고를 공고했으며 조례안 제11조에서는 특별히 길고양이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도 길고양이 학대에 관한 뉴스는 계속 올라온다. 최근에는 살아있는 고양이를 지하실에 감금한 아파트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미자 회장은 “고양이들이 마음 놓고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고양이들이 잘 먹어서 뚱뚱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해 부은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실제 길고양이들은 길에서 사람 음식을 먹다보니 염분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되고, 물을 많이 마셔 염분을 배출해야 함에도 물을 마시지 못해 염분으로 인해 몸이 붓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는 마지막으로 “작은 생명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somang0912@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