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당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감(sense of safety)'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 이상 그 트라우마의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나 ‘나는 안전하다’는 안전감이 확보되는 것이 심리적 외상으로부터 치유되기 위해 우선해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에 벌어진 상황들은 대한민국을 불안, 공포, 분노에 빠지게 하고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던 대다수의 국민들마저 안전감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 발생 후 학생 생존자 심리지원은 수년간의 재난상황을 비춰볼 때 매우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재난에 대처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반적인 재난을 다루는 조치는 미흡할 뿐 아니라 혼란스러웠다.

세월호 침몰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대다수가 아직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길에 올랐다가 당한 사고이기에 그 학생들과 가족들, 교사들뿐 아니라 소식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기고 기적 같은 생존을 기대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들이다.

그래서 더욱 사건의 발생, 그 당시 대처 그리고 그 이후의 구조 과정 및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하나하나의 상황, 발언, 기사, 방송, SNS 등을 들여다보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비난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 만큼 이 사건에 압도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건 이후에 벌어진 재난대응방식은 사람들의 불안을 더욱 조장했다. 전원구조소식 발표 이후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갑자기 구조되지 못한 실종자가 200명이 넘는다고 하고, 구조자도 숫자가 계속 번복되었다. 구조과정에 대해서도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니다가 번복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의 발표가 어긋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구조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실제와 다른 발표, 기사, 방송이 나간다는 제보들이 계속되고 구조 작업은 초기에 생존자 구조 이후로 별다른 소득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의 재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민은 불안하고 언제든 이런 사고가 터질 수 있고, 사고, 재난이 터지면 누구든 세월호의 탑승자들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 두려움을 느낀다. 거기에 언론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방송, 기사를 내보냈다가 사과를 하는 등 공신력을 잃고,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이 사건을 이용하는 무리들도 나타나고, 때로는 자신의 상대를 공격할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지고, 국민들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방송, 기사, SNS 등을 통해 사건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차적으로 트라우마(secondary trauma)를 겪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안타깝고 불행한 하나의 슬픈 ‘사고’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들, 배를 타는 많은 사람들, 수학여행, 현장체험을 가는 학생들에게 안전하다는 ‘안전감’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진행되었다. 우왕좌왕하는 재난대책본부를 비롯한 정부, 제보자나 정보의 정확성이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무작위로 전달되는 정보들, 1학기 모든 현장체험활동을 중단한다는 경기도 교육청 발표 등은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누구나 다 위험하다’, ‘대한민국에는 재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트라우마 이후 피해자들은 신경계의 극도의 활성화를 유발하는 쇼크 상태를 경험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압도된다. 재난시스템을 운영해야할 정부와 관계자들이 더 이상 압도되어서는 안된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여 신속하고 담담하게 대처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모습 속에서 국민들은 안전감을 되찾아 갈 것이다.

비록 초기대응의 실패로 인한 결과는 참담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시스템을 작동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침몰한 것은 아니라는, 대한민국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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