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씨즈온>

[환경일보] 이연주 기자 = 두 소녀의 현실과 신념, 사랑과 우정에 대한 갈등을 담은 영화 ‘진저 앤 로사’의 시사회가 지난 4월30일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렸다.

‘진저 앤 로사’는 1993년 유럽영화상을 비롯해 25개 이상의 국제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영화 ‘올란도’로 전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여성 감독, 샐리 포터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또한 ‘진저 앤 로사’는 샐리 포터 감독이 10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는 1960년대를 살아가는 두 소녀의 시선을 통해 굴곡의 역사 속에서도 자신이 믿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혼돈의 시대 속 10대의 불안

‘진저 앤 로사’의 배경은 1962년 냉전 시대의 런던으로, 재즈의 낭만과 전쟁의 불안이 공존하던 혼돈의 시대다. 진저와 로사는 1945년에 끝난 세계 2차 대전의 영향이 짙게 남았던 시절, 같은 날에 같은 병실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들의 친분으로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단짝으로 자라난 진저와 로사는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물론 음악과 정치, 꿈까지 함께 나누는 10대 소녀가 됐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고,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두 소녀는 각자의 상이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사회 문제에 몰두하는 진저와 매혹적인 만남에 설레는 로사의 갈등은, 비록 소울메이트라고 해도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진저는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과 소련의 대치가 극에 달해 핵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해 노심초사한다. 매일 라디오를 통해 미국과 소련의 대치 상황에 대해 듣고,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시를 쓰고, 직접 핵무기에 반대하는 단체에서 연설을 듣는다.


샐리 포터 감독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나는 고작 13살이었고, 원자 폭탄의 존재와 히로시마의 공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세상이 당장이라도 멸망할 것처럼 두려웠었다”고 말하며, “진저가 종말에 대한 불안을 겪었던 자신의 10대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진저가 핵무기 반대 시위까지 참여해 광적인 흥분을 보인 장면은, 1960년대의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춘기 소녀의 불안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 지켜내는 신념과 우정

혼돈의 시대에도 ‘우정’과 ‘사랑’은 있다. 인간은 생과 사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사랑을 나누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 로사다. 어릴 적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로사는, 세계의 평화보다는 영원히 자신을 사랑해줄 남자를 더 간절히 원한다.

처음에는 상이한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진저와 로사는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로사가 진저에게 함께 세계의 종말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진저가 로사와 함께 클럽에서 남자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로사가 다름 아닌 진저의 아버지, 롤랜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롤랜드는 자유주의 사상가로 “우리의 인생은 한 번 뿐이야. 그러니 현실에만 충실하면 돼”라고 말하는, 세계의 종말을 걱정하는 로사와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로사는 그런 롤랜드에게 매혹되고, 진저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신념을 중요시하는 롤랜드 또한 진저의 엄마인 나탈리와 별거한 채 로사와 사랑을 나눈다.

진저는 로사와의 우정을 위해, 그리고 부모님의 관계를 위해 로사와 아버지의 부도덕한 관계를 알고서도 비밀로 한다. 그러나 로사가 롤랜드의 아이를 갖게 됐다고 고백하자 진저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친구와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한 개인적 혼돈과, 극단으로 치닫는 냉전으로 인한 시대적 혼돈이 로사를 절벽 끝까지 몰아붙인다.

로사가 롤랜드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안 나탈리는 자살 시도를 한다. 그러나 로사와 롤랜드는 끝까지 자신들의 사랑을 이해해주기를, 진저가 자신들을 용서해기를 원한다. 그들의 모습은 이기적으로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간이 전쟁 속에서 상대방을 무참히 죽일 때 볼 수 있는 삶의 욕구만큼이나 강렬한 사랑의 욕구를 느끼게 한다. 결국 로사를 용서하기로 결심하는 진저에게서는 우정, 더 나아가 사랑에 대한 숭고한 신념을 느낄 수 있다.

여성 감독 샐리 포터가 다코타 패닝의 여동생 엘르 패닝과 신예 앨리스 엔글레르트를 캐스팅해 섬세한 연출과 배려로 두 소녀 배우들로부터 완벽한 연기를 이끌어 낸 작품, ‘진저 앤 로사’는 5월15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윤미나 문화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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