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이연주 기자 = 인간의 정서와 인간관계의 뿌리인 ‘가족’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모든 가치관이 경제적 효용성이란 잣대로 저울질 되면서 인간관계의 최소 단위인 ‘가족’마저도 이를 피하기 힘들게 됐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를 돈 대주는 기계쯤으로 여기고 젊은이들은 결혼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을 ‘경제성’으로 두고 있다. 또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많은 노인은 요양원에서 외로운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러한 현실 속 연극 ‘봄날은 간다’는 해체되는 가족관계라는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봄날은 간다’의 주제는 흔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터넷 시대의 가볍고 즉흥적인 사랑이 아니다.

어렵고 고통스럽게 이뤄낸 따스한 봄볕 같은 묵직한 사랑이다. 생면부지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이 ‘가정’이란 관계를 만드는 과정을 눈물겹게 그려내며,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힘들고도 가치 있는 일인지를 증명한다.

어느 화창한 봄날. 젊은 남녀 내외가 어머니 묘소에 성묘를 간다. 이들은 부부이기 이전에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오누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복남매 지간이었고, 어머니의 지독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까지 했다.

사실 어머니의 반대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고, 몸이 약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딸을 차마 부탁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 아픈 상처들과 화해하며 가는 길, 이제 코앞에 어머니의 무덤이 보이려는데 아내는 끝내 발작을 일으키며 남편의 품속에서 죽어간다. 연극은 현실과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들이 가족이 되는 눈물겨운 과정을 아우른다.

2001년, 실험 연극의 산실이 됐던 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된 ‘봄날은 간다’는 2002년 동아 연극상 3개 부문(작품상, 무대미술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는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환상의 캐스팅’


초연 당시 관객을 30명으로 제한, 극장 구석구석에 8개의 스피커를 심어 사운드 입체감을 살리고 산에서 실제 흙과 솔잎을 가져다 객석에 솔 향을 날리는 등 9일 동안의 극장 리허설, 작곡 및 실연 녹음 등 소극장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대학로에 회자됐다.

금번 공연에서도 더욱 풍성한 입체적 공연은 이어진다. 우선 5.1채널의 스피커를 극장 곳곳에 보이지 않게 설치해 풍경 소리, 갈대 바람소리, 여우비 소리 같은 효과음들이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준비된다.

또한 객석의 사석, 무대의 전면부, 관객들의 등·퇴장로, 극장 벽면들을 무대로 이용해 극장 전체가 아름다운 봄 언덕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도록 꾸며진다. 관객들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앤 봄 언덕 자락에 앉아 아름다운 연극 한편을 눈앞에서 보는 경험한다. 여기에 실제 솔방울과 솔잎, 생화(生花) 등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더욱 실감나는 따사로운 봄 언덕을 창조한다.

‘봄날은 간다’는 캐스팅이 확정되자 대학로의 블루칩으로 화제가 됐다. 강력하고 섬세한 작품성의 연출가 김경익과 연기상 수상  경력만 한 페이지를 메울 실력파 배우 길해연,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물오른 배우 김지성, 그리고 상남자 정석원이 연극 무대에 함께 하는 것이다.

특히 정석원은 ‘봄날은 간다’가 연극 데뷔 무대다. 그는 매일 츄리닝 차림으로 성북동 지하연습실에서 꿋꿋하게 연기의 참맛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상대 배우 모두 동아연극상 연기상 경력의 쟁쟁한 선배들이고, 작품 역시 동아연극상 3개 부문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새로운 연기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연극 ‘봄날은 간다’는 6월16일부터 7월20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한강아트컴퍼니(☏02-3676-3676, ☏070-8776-1356)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yeon@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