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이연주 기자 = 지구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3년 유럽의 불볕더위는 7만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2005년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도시의 절반을 수장시켰다. 또한 2010년 파키스탄의 홍수는 2000만명의 이재민을 만들었고 2012년 호주의 대홍수는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과 맞먹는 광활한 면적을 물로 채웠다.

반복되는 기상이변에 기후변화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비정상이 일상화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더욱이 이런 재해는 병든 지구의 증상 중 하나로 환부에 약을 바른다고 해도 병이 낫지는 않는다. 이 속에서 우리는 안전한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다. 그의 몸에는 고열이 오르고 이곳저곳으로 통증이 번지는 중이다. 하루빨리 근본적인 치료를 받고 식이요법을 하며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해 한참 더 벌어야하기 때문에 수술대에 누울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진통제를 요구했다. 눈앞에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효과가 있다. 좀 불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여긴다. 그는 여전히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

과연 이 환자가 계획한 미래는 찾아올 수 있을까? 지금 인류의 모습은 이 암 환자와 다르지 않다. 다행히 치료할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애써 포기하고 있다. 병증은 이미 나타났다.

이제 기후변화는 지구 생존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급한 생사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다. 마치 영생할 것처럼 미래의 풍요를 계획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인류의 운명은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성찰의 계기와 방향을 제공하는 책이 나왔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안병옥의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21세기북스)이 그것이다.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의 근본적 변화가 해답

이 책은 우리의 사회·정치적 선택과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화학물질로 뒤범벅된 삶을 산다. 사방에서 화학물질을 뿜어내는 집에서 살며 유독한 화학물질로 코팅된 옷을 입고 농약 칵테일을 먹고 마신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것을 일부 피할 수 있다. 개인적 웰빙을 추구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나만의 도피처는 금방 무너지고 만다. 이웃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회 전체의 웰빙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책은 말한다.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에 따르면 녹색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순진한 발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연비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주행량이 늘어나기 마련으로 기술 진보와 인간 욕망의 함수관계를 풀지 않는 한 대안은 없다.

또한 우리의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희망이 있다. 토목공사 위주의 개발과 대량 에너지 소비를 위한 원자력 의존, 이익 극대화를 위한 화학제품 사용이 무한정 허용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부터 정치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지구 환경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값싸고 맛있지만 나쁜 식품을 고를 때마다, 식품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적 흐름을 거슬러 가축을 살찌우고 유전자 조작을 감행하고 농약 칵테일을 들이붓는 파괴자들의 동지가 된다.

반대로 우리는 일주일에 햄버거를 한 번만 덜 먹을 때, 서울에서 전주까지 자가용을 왕복 운행했을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양만큼 줄일 수 있으며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사는 삶에 익숙해짐으로써 자동차 문명이 만들어낸 그늘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주의’ 내려놓고 ‘지구주의자’ 길 가야할 것


또한 화학 세제 대신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등을 이용해 설거지나 청소를 함으로써 맑은 물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등 생활 속 실천법 역시 소개돼 있다.

기후변화형동연구소 안병옥 소장은 책을 통해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가 될 수 있으며 반부패에 역점을 두어도 좋다. 그러나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주의’을 내려놓고 ‘지구주의자’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고 제언했다.

한편, 저자인 안병옥 소장은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환경문제와 맞서 싸워온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첫 세대에 속한다. 1991년 독일로 건너가 에센-뒤스부르크대학에서 생태학을 전공, 200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과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내 기후, 환경, 생태 분야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학자이자 운동가로서 대학 강의, 칼럼 기고, 토론과 운동 기획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역서와 저서로는 ‘기후의 문화사’, ‘코펜하겐에서 칸쿤까지’,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등이 있다.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은 “안병옥 소장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환경지킴이다. 환경지킴이 중에서도 드물게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환경전문가다. 그래서 그의 말에는 언제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다. 이 책이 이 땅의 환경지킴이는 물론 환경을 걱정하는 모든 이들의 손에 쥐어지기 바란다”고 추천사를 전했다.

 

yeon@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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