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환경일보]  과거에는 동양의 고전 즉 논어, 맹자, 중용, 대학과 시경, 역경, 주역 등 이른바 사서삼경이 학식의 척도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과거시험이 시행되던 시대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곧잘 이러한 고전을 인용하는 경우가 종종 많았지만, 이제는 동양의 고전을 거론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긴 하였으나 오랜 시간 우리의 전통사회를 지탱해 온 사상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당소방서 서현119

안전센터 양광호 소방위

논어나 맹자 등 제목만 들었을 뿐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책 이름을 왜 그리도 열심히 외웠는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고전 중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책이 있다면 아마도 ‘손자병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그 유명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은 본래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謨攻篇) 제3(第三)에 나오는 말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이다.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다.

 

전투를 준비하는 장수와 말단 병졸이 자신과 상대의 약점과 강점을 잘 알고 거기에 걸 맞는 작전을 세우고 싸움에 임한다면 분명 백전백승을 거둘 것이다.

백전백승을 설명하기 위하여 손자병법에는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만 알면 일승일패요, 적의 상황도 모르고 나의 상황도 모른다면 매번 패한다”고 적고 있다. 지금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탈락하여 그 흥미가 많이 반감되었지만 우리가 패하게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적을 모르고 나를 몰랐기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손자병법이 단순히 전쟁에 나가는 장수들이나 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들만이 보고 배워야하는 그런 책이었다면 손자병법의 이름은 이미 소멸했을지 모른다. 손자병법은 단순한 병법책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담고 있어서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으로, 그 책의 저자 손무 선생을 매번 싸움을 능사로 하는 호전가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싸워서 이기는 것은 차선이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 하였고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싸우되 이겨놓고 싸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상대가 허약하고 보잘 것 없어서 싸움에서는 쉽게 이길 수 있다 할지라도 싸움은 필연적으로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므로 기왕이면 싸우지 않고 이기라는 것이다.

크고 작은 화재현장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나에게 있어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대상은 인격체가 아닌 화마였기에 그것을 알려고 노력한 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으며 그런 가운데 ‘화재에 대한 겸손’을 배웠다.

화재와의 싸움에서 ‘백전백승’하기 위하여 평소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렇게 된다면 소방대원이 그 험한 곳으로 목숨 걸고 들어가야 하는 위험한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게 되는 그러한 세상이 손자병법이 추구하는 세상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4만 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하고 있는데 얼핏 화재가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화재예방의 결과로 화재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발생하지 않은 화재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건물 관리인이 화재예방교육을 잘 받아 소화기 등으로 초등진화에 성공한 경우나, 스프링클러 나 화재감지기 등 소방 설비를 설치해 화재로 인한 피해를 줄였다면, 손자병법에서 주장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그런 화재진화 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고가 없을 수 없겠지만 사전에 최대한 사고를 막는 것이 막상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여보게 어설픈 소방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일세.” 지금도 손무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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