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영애 기자 = 누군가에게 쉼이 되고 위로가 될 수필집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수필가 이강순씨가 해드림출판사에서 자신의 첫 수필집으로 펴냈다. 컬러와 양장본으로 묶은 이 수필집은, 저자가 오랫동안 카메라에 담아온 풍경을 곁들인‘사진이 있는 에세이집’이다.


소박하고 고졸(古拙)한 저자의 수필들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일상을 극복한 사유와 탁월한 감각은 저자의 성숙한 정서로 보인다. 단풍나무 표피처럼 군잎 없이 매끈하고, 읽고 나면 영혼이 평화로운 수필집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유년에서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수필가들은 영혼 깊숙이 묻혀 있는 자취소리를 꺼내, 알알이 꿰어놓기도 한다. ‘내 마음의 보석’인 셈이다. ‘소쩍새 울음’처럼 몸부림하며 닦은 이들 수필에서는, 보석의 속성인 빛이 은류하기 마련이다. 저자 가슴에서 독자 가슴으로 전이된 이 빛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감동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휴머니티의 근간인 가족은 모든 문학에서 영원한 테마이기도 하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는 안도현 시인의 ‘간장게장’ 마지막 구절이다. ‘간장게장’이라는 지극한 일상에서 찾아낸 메타포의 아름다움이 눈물 나도록 드러난 구절이다. 나팔꽃은 일상이지만 그 나팔꽃 속의 별과 빛은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저자는 오랫동안 카메라와 함께하면서 자연 속 이면의 피사체를 발견하는 힘을 길러왔다. 이 힘이, 살구꽃이나 전철 같은 일상에서도 슴베를 바라볼 줄 아는 수필가의 여유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노을 속에서 비치는 처연한 정조(情操)처럼
‘노을빛에 반사된 풍경들은 나무와 새뿐이 아니다. 하루를 살아온 오늘이 있고, 한 생을 살아온 삶이 거기 포도주처럼 익어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이미 사진 속에 빠져버렸다는 증거이다. 아님 그림 속 배경에서 그리움을 동반한 어떤 회상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커피가 다 식도록 꼼짝도 않은 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노을을 보면 언제나 아버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표현할 수 없는 구수한 쇠죽 냄새와 쇠죽을 들고 쇠마구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등허리가 생각난다. 옆집 동배네 키 큰 살구나무가 우리 집 마당 가득 긴 그림자를 드리우면 아버지는 노란 겨울 햇살을 등지고 여물을 들고 쇠마구로 들어가셨다.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암소와의 끈끈한 교감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햇살도 감히 그 탄탄한 사랑에 끼어들지 못한다. 여물을 먹는 동안 아버지는 수유하는 엄마처럼 쇠잔등을 긁어주며 그윽한 눈빛으로 소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작품 ‘노을’ 중에서

석양의 노을은 지나온 삶을 위로하며 품어주는 하늘의 가슴이다. 하루든, 황혼이든 이 가슴 앞에서 받는 위안을 통해 우리는 힐링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미 소와 새끼의 비감이,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고뇌로 비껴 스치는 이 수필이,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의 대표적 작품인‘노을’이다. 노을 속에서 비치는 처연하면서도 포근한 눈물이 가슴을 타고 은류(隱流)하는, 고운 색감의 수채화 된 수필이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감성과 정서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붓으로 그려냈을 때, 보석처럼 반조(返照)되는 수필은 흔하지 않다. 행간 행간에서 저자의 군살 박힌 필치가 느껴지는 까닭이다. 오랫동안 간직하던 물건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되찾았을 때 밀려드는 기쁨 같은 것이 여기에는 있다.

독자들은 저자의 수필에 적응하는 시차가 짧을 것이다. 금세 작품과 그 정서에 친숙해진다는 뜻이다. 다른 장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필의 묘미이기도 하다.

*저자: 이강순
*출판사: 해드림출판사
*출처: 해드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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