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최근 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고에 대해 국가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요약하자면 ‘국가가 가습기살균제 허가를 내주기는 했지만 신고의무가 제조업체에게 있고 국가는 독성물질에 대해 몰랐으니 책임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도록 강제해야 할 재판부가 예상되는 위험을 제거해야 하는 국가 의무를 너무 좁게 해석함으로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화학물질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가습기살균제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제품의 용도가 바뀌면 독성의 성격 또한 달라지기 때문에 제품 용도변경에 따른 독성평가를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지적했다.

가습기를 세척하는 용도로 사용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화학물질이, 직접 가습기에 넣어 흡입용도로 경우에는 인간의 죽음을 불러올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고 화학물질 관련 법 또한 차일피일 미루다 가습기살균제,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등 각종 사망사고를 계기로 여론이 나빠지자 그제야 서둘러 법을 만들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것이 알려진 후 7개월이나 지나서야 제품을 수거한 것 또한 문제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지나치게 배려하다보니 정작 생명과 직결된 문제는 대처가 늦어진 것이다.

국가가 세금을 걷어 들여 군대와 경찰을 키우고 각종 법과 제도를 통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기껏 돈 들여 군대를 키웠는데 막상 외적이 쳐들어와 쑥대밭이 되고 난 이후 ‘국가는 책임이 없어요, 외적이 쳐들어오는 걸 몰랐거든요’라고 한다면 군대가 왜 필요할까?

국가가 제품 생산을 허용한 합법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믿고 사용하다가 아내와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게 ‘국가는 책임이 없어요, 독성물질인줄 모르고 허가 내줬거든요’라고 책임을 미룬다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모든 규제가 인간의 활동을 제한하는, ‘사악하고 나쁜, 기요틴에 매달아야 할 惡’이 아니다. 굳이 루소의 사회계약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규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다. 대한민국에는 돈 벌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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