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무역시장에서 환경이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무역 분야에서 환경문제가 논의된 것은 1970년대 이후 무역을 통한 환경오염의 확산사례가 빈발하면서 시작됐다.

선진국들이 오염토양과 폐기물을 위장수출 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해폐기물의 국경 간 이동에 관한 협약(Basel협약), 사전통고 및 승인 협정(PIC) 등이 체결됐다.

또한 지역에서 발생한 환경오염물질이 전 세계로 퍼져 지구적 영향을 미치는 물질(오존파괴물질, 온실가스)에 관해서도 논의가 이어졌다.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선진국들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조치가 자국의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무역규범 안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규범과 무역규범은 기본적인 논의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협의에 다다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다자간 통상규범과 기후변화협약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GATT, WTO 등 자유무역체제는 통상을 제한하는 규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데 목적이 있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한 환경규범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익을 제한하고 규제하는데 목적이 있다.

유전자조작식품의 경우, 환경적 측면에서 보면 건강이나 환경에 유해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위험성만으로 예방 차원에서 수입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WTO 무역규범에서는 수입국 소비자의 건강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명백한 과학적 근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1995년 채택된 WTO 전문에도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개발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까다로운 예외적 요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무역분쟁을 불러일으키기 일쑤다.

1972년 미국은 해양포유동물보호법에 따라 정한 기준을 초과해서 포획하거나 살상하는 방법을 사용한 어류 혹은 가공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이후 1990년대 초 돌고래 보호를 위해 참치 수입금제조치가 GATT 위반이라는 판정이 나오면서 환경단체의 반무역 정서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세계 환경상품시장 2조원 육박

현재 발효 중인 약 200여개의 환경협약 가운데 명시적인 환경 관련 무역규제 효과가 있는 협약에는 멸종위기야생동물국제협정(CITES), 몬트리올의정서, 바젤협약 등이 있다.

세계 환경상품시장 교역액은 2002년 6514억 달러에서 2012년에는 1조 9339억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후변화가 환경규제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수의 기후변화 대응상품 품목들이 협상대상에 포함돼 2015년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합의될 ‘Post-2020’ 기후체제와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국제사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경쟁력 및 기술 수준을 고려해 LED 조명, 탄소섬유, 가스보일러, 가스온수기, 손건조기, 리튬이온축전지, 메탈실리콘 등을 포함한 43개 협상대상품목으로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Post-2020에 따른 기후변화와 통상문제’ 토론회에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강상인 선임연구원은 “온실가스 문제를 다루는 기후변화협약은 명시적 무역규제 규정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국내적으로 취하는 조치가 무역차별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기후변화체제와 통상문제를 연계해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사진=김경태 기자>



한국 ‘기후변화보다 통상 우선’

 

우리나라는 외견상으로는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무역 의존도에 따른 통상 우위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덕영 교수는 “기후변화협약 채택 과정에서 기후변화대응이 통상에 장애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데 한국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가 BAU(Business As Usual) 대비 30%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절대량 측면에서 보면 1990년과 비교해 실제로는 2배 가량 늘어난 배출을 유지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세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왜곡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대형차를 많이 생산하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배기량 기준방식을 유지하되 세율단계를 3단계로 간소화하고 2000CC 이상 대형차에 대한 세율을 220원으로 단일화해 결과적으로 대형차에 대한 조세부담이 줄었다.

박 교수는 “미국, 독일, 일본은 연비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 세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영국은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자동차 세율을 운영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할 예정이던 저탄소차협력금제 역시 산업계 압력에 굴복해 2020년 이후로 연기되고 말았다. 이 제도는 자동차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은 자동차 구입 시 보조금을 지급하고 배출량이 많은 대형차를 구입할 때는 부담금을 거두는 제도다.

관련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산업계와 기획재정부는 한미 FTA 규정에 따른 통상법적 문제가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덕영 교수는 “한미 FTA 규정과 달리 저탄소차협력금은 조세가 아니라 부담금을 대상으로 하며 차종별 세율의 확대가 아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충돌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EU는 ‘국경조정’ 논의 한창

이에 대해 산업통상부 김호철 과장은 “자국 제품에 적용하는 규제를 수입제품에도 적용하는 ‘국경조정’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과 EU 등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세 또는 배출권거래제 도입 과정에서 그들 나라의 산업계 역시 경쟁력 저하와 탄소누출 우려가 제기됐다. 그리고 해결방법으로 수입상품에 대해서도 배출권 제출 의무를 부과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배출권 국제보전 등의 국경조정 조치를 명문화했으며 이에 대한 WTO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김호철 과장은 “외국과의 공정한 경쟁여건 조성을 위해 합리적인 경쟁력 보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우선은 산업계 비용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하면서 국경조정 등 배출권거래제의 동등한 적용문제를 기후변화협상을 통해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가 이익 타령 이젠 멈춰야”

 

기후변화 대응은 전 세계적 과제다. 특정 국가만 이익을 얻겠다고 대응을 게을리 한다면 국제적 비난은 물론 무역보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박덕영 교수는 “지구환경 개선이라는 대명제 앞에 항상 그래왔던 국가 이익 타령을 이제는 멈춰야 할 때”라며 “경제만 앞세우지 말고 환경을 생각하면서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국정지표가 수정돼야 하고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길게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경조정’ 논의가 활발한 상황에서 국내 산업계가 경쟁력 타령만 늘어놓는다면 새로운 무역질서에 편입되지 못하고 뒤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국적에 상관없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할 인권이 바로 환경이다. 이를 토대로 통상협상을 했을 때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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