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달래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영국 본사까지 날아가 잘못을 바로 잡아 달라 호소했지만 영국기업 레킷벤키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4명과 시민단체 대표, 정부조사 책임자였던 대학교수 등이 영국 런던외곽 레킷벤키저 본사 앞과 런던시내 웨스트민스터 국회 앞 등에서 항의시위와 언론인터뷰를 통해 가해기업 레킷벤키저의 ‘진정어린 사과와 책임 인정’을 요구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바이오사이드 생활용품의 안전문제를 철저히 점검하라고 촉구했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경제발전을 주도했지만, 또한 런던스모그 사건 등 엄청난 환경문제를 겪으며 환경과 보건, 안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나라다. 그런데 영국회사가 만들어 판매한 제품 때문에 사망자 100명, 생존환자 303명을 합해 무려 403명의 피해자가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영국과 유럽사회는 놀랐을 것이다.

영국 항의방문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자존심 강한 영국 국민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업의 바른 책임을 촉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부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530명중 76%인 403명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을 사용했다. 사망자 142명중 70%인 100명이 옥시싹싹 제품을 사용했다.

2001년 이전에 국내기업 동양화학그룹의 계열사 옥시가 만들었지만, 2001년 영국의 종합생활용품 업체이며 세제, 방향제, 위생용품 분야의 세계적 업체인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가 인수해 만든 옥시레킷벤키저에 의해 2011년까지 11년 동안 판매됐다.

건강·위생·가정이라는 3대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 건강을 파괴했고, 가정에 질환을 가져왔고 가족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가족들은 항의했다. 레킷벤키저 본사 측 대표자들은 소송이 진행 중이라 책임표명이 어렵다면서 한국에 있는 RB코리아(최근 개명)에 떠넘겼다. 피해자가족 등은 영국 항의방문을 통해 회사 측이 법적 소송을 핑계로 사과와 책임표명을 회피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본사를 영국법원에 제소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향후 국내에서도 추가소송을 준비하고 영국, 유럽 등 국제시민사회와 더불어 피해자를 외면하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해당 기업을 규탄하는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전했다. 최근까지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늘고 있고, 가해자 없는 외로운 싸움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태도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엄청난 사고가 터졌는데도 대책 마련과 수습,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보상하는 일에 어설프기 그지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진 말도 안되는 화학물질 피해사고에 대해 정부는 방관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눈치 보는 모습이 계속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펼쳐주길 기대한다. 안전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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