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번호 86번의 원소 라돈(radon, Rn)은 강한 방사선을 내는 비활성 기체 원소로 1900년을 전후해서 여러 방사성 물질에서 발산되는 기체로 발견됐다. 라돈은 라돈 자체 혹은 이의 방사성 붕괴 생성물들이 내는 강한 방사선 때문에 인체에 매우 해로운 원소다. 중세 시대부터 광부들의 수명이 짧고 폐병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았는데, 라돈이 주된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라돈은 또한 흙, 암반, 건축재료 등에 들어있는 라듐의 방사성 붕괴에서 방출되므로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건물의 실내, 특히 지하실에 라돈 기체와 이로부터 생성된 방사성 물질들이 축적돼 거주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폐암 환자의 약 10%가 라돈 흡입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흡연 다음으로 큰 폐암 발병 원인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발암물질인 라돈의 위험성을 우리나라 고용노동부조차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 규정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근로복지공단은 서울시 도시철도공사에서 15년간 근무한 두 노동자에게 업무상 질병, 즉 라돈으로 인한 폐암 사망을 인정했다.

오래 전부터 지하공간에서 근무하는 기관사, 역무, 설비 등 많은 노동자들에게 라돈으로 인한 건강장해가 발생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24조는 방사선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방사선’에 라돈이 포함되므로 이 법에 의해 사업주는 라돈에 의한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할 보건조치 의무를 지게 된다.

라돈으로 인한 피해 예방 조치사항과 관리기준 마련은 노동부 소관이다. 그러나 현재 방사선 건강장해 예방 규정(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원자력시설이나 비파괴검사 등 인공방사선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규정이기 때문에 자연방사선인 라돈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노동부는 지하공간에서의 라돈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태이고, 각 시설의 농도 측정값마저 거의 존재하지 않아 산재인정에 어려움이 많다. 사업주가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환기설비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등 보건조치의무를 소홀히 해도 관리·감독은 전무하다. 자연방사선인 라돈으로 인한 근로자 피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노동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논리는 ‘규정에 없기 때문’이라는 건데 근로자의 권익을 제대로 살펴 지켜주지 못한다면 노동부의 존재이유도 사라지는 것 아닐까. 인공방사선 피해는 인정하고, 자연방사선 피해는 인정할 수 없다면 근로자를 실험대상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어떻게 하든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고 근로자가 안전하고 쾌적한 조건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 노동부의 역할 아닌가 말이다. 고용노동부는 보건조치의무를 구체화하고 라돈에 대한 관리기준을 즉각 마련하고 사업주에게 법적의무를 다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침묵의 살인자’를 잡아 근로자들의 귀한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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