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 중 갑자기 나타난 동물들이 차에 치이고, 운전자가 피하려다 차량이 전복되는 낯 선 외국뉴스가 어느새 남 일이 아닌 상황이 됐다. 2015년 상반기에만 49종, 408개체의 야생동물이 우리나라 곳곳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는 ‘로드 킬(road-kill)’을 당했다.

야생동물의 활동반경을 가로지르는 도로 등을 건설하게 되면 노루, 고라니, 곰 등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갑자기 뛰어들어 차량에 치어 죽는 현상이 발생한다.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 있지만, 운전 중 돌발 상황을 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로드킬 방지의 일환으로 생태통로를 만들어 왔다.

생태통로는 도로나 댐, 수중보, 하구언 등으로 인한 야생 동식물 서식지의 단절, 훼손, 파괴를 방지하고, 이동을 돕기 위해 설치되는 인공구조물이나 식생 등 생태적 공간을 말한다. 야생생물에게 천적 및 대형교란으로부터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단편화된 생태계의 연결로로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교육·위락·심미적 가치 제고, 개발억제 효과 등의 역할도 한다.

생태통로는 야생동물의 활동반경을 넓혀 근친교배를 막아 멸종가능성을 낮춰주기 때문에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전체 415개의 생태통로 중 야생동물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곳은 9.6%에 불과할 정도로 이용률이 낮고, 약 90%가 생태통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생태계를 배제한 채 부적절하게 사업을 전개했기 때문이며, 또한 생태계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생태통로를 조성했거나 설치 후 이용 모니터링을 통한 보완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도로건설로 이동통로가 단절돼 서식공간이 좁아진 동물들이 도로를 건너다 로드킬을 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좁은 서식공간은 생태계 다양성마저 파괴한다.

바로 다수를 차지한 동물종이 세력을 확대해 다른 종을 밀어내는 상황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선에서의 로드킬 분석 결과 1997년에 비해 출현 종수가 12종에서 6종으로 줄어든 반면 로드킬 개체 수는 825마리에서 1738마리로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밀려난 동물종이 서식지 외곽으로 이동하다 로드킬을 당해 숫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설상가상 개발사업 과정에서 진행되는 동·식물 조사 역시 멸종위기종 여부만 확인할 뿐 생태계 단절 등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토양과 식생의 정착 미흡, 급경사, 배수로 내 탈출구 미설치 등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생태통로도 부지기수이며, 모니터링과 평가시스템이 없어 잘못된 생태통로가 재현되고 있다.

생물다양성 보호 측면에서 야생동물피해를 줄이고, 운전자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태통로를 조성하도록 관계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보완노력이 시급하다. 계절과 지역 특성에 따라 높이와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 일본 북해도 한 지역에서는 겨울철 적설량을 고려해 안전철조망 상단부에도 동물통로를 마련 한다.

생태통로가 왜 필요한지 설치목적부터 다시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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