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뭄과 홍수로 인한 피해규모는 1980년 3195억원에서 2000년대 1조7천억원으로 5.3배 증가했다. 이렇게 어려운 물 문제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인식과 정부의 대처는 안이해 보인다. 정부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보다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물 관련 규제를 부처별로 만들어 물 체계를 복잡하게 하는데 한몫해 왔다.
우리나라 물관리 주체는 크게 다섯으로 하천관리와 치·이수 등 수량 관리는 국토부가, 환경 및 수질관리는 환경부, 농업용수와 농어촌 저수지 등은 농림부, 수력발전은 산업자원부, 소하천 정비 및 재해 대응은 국민안전처가 담당하고 있다. 부처별 중복투자로 예산이 낭비되고, 홍수나 가뭄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세우는 물 관련 계획은 40개가 넘지만 연계성이 없고, 중복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똑같은 하천사업을 두고 부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추진하는 일도 반복돼 왔다. 두말할 것 없이 효율적인 물 관리를 위해 부처별로 흩어진 정책을 한 곳에 모으고 수량과 수질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물관리통합은 1997년 15대 국회 이래 지난 17년여 간 8번이나 관련 법안을 발의해도 성과가 없었다. 통합을 위한 권한 이양은 예산 역시 넘긴다는 의미인데 부처는 물론 산하 학회, 협회, 산업계 등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수조원의 물 예산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새 물관리기본법과 대통령 산하 물관리위원회 신설을 핵심으로 공청회가 열렸지만 ‘물세력 겨루기’를 깨기에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새로운 법 제정 이전에 물관리위원회 같은 물관리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지만, 실효를 거두려면 예산편성권 등 강력한 기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기후변화와 기상재해에 대비해 세계 각국이 통합물관리를 적극 추진하는데 한국은 밥그릇 싸움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널뛰기 하는 비정상적 물관리가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더 한심한 것은 42년만의 가뭄을 겪으면서 4대강에 담겨진 11억7000만 톤의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 마치 신기한 일인 듯 눈치 보며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4대강 물도 분명 대한민국 물인데 사업과정에서 제기된 문제 때문에 그 물을 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이건 쇼(show)다.
물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을 바로 하고 편견을 접어야 하며 정치적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 이번 가뭄을 계기로 물 값을 현실화하고, 앞으로 더 큰 가뭄과 폭염을 대비해 물 수요관리를 본격화해야 한다. 편하고 값싸게 수도물을 받는 대도시 거주자들이 물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