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비극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문제가 불거진 지 4년이 지난 현재까지 추가사망자가 나오고 있으며 검찰은 뒤늦게야 수사에 돌입했다. 게다가 유엔인권이사회도 방한해 조사에 나섰다. <편집자 주>

지난 2011년 4월 산모 8명이 원인 모를 급성폐질환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절반이 사망했다. 병원 측은 원인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다. 4개월 간의 역학조사 끝에 원인 모를 괴질이 아니라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같은 해 11월 유통 중인 옥시싹싹, 롯데 와이즐렉 등 6종의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동물실험을 한 결과 폐 섬유화 현상이 발견되면서 강제 리콜명령이 내려졌고 나머지 제품들 역시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수백명이 죽었지만 가해자는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았고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법원마저 국가의 책임을 부정했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2012년 1월 유가족 6명이 제조업체와 국가를 상대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다. 2013년 12월에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공식 인정했다.

2014년 3월, 정부는 공식적으로 접수된 361건의 신고 가운데 168명에 대해 피해를 인정했고 이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같은 해 8월, 피해자들은 옥시레킷벤키저 등 15개 업체를 살인죄로 고소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와 산모를 죽게 만든 책임을 회피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사 대표 등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며 “경찰 수사에서 유죄가 인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일부 제품에 대해 제한적인 방식으로 진행한 동물실험 조사를 모든 제품으로 확대하고 폐질환 외에도 다른 건강에 피해를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검찰, 뒤늦게야 수사 나서

“누가 우리 며느리를 죽였노”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절규에도 정

부는 미적미적 대응했다.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검찰은 뒤늦게야 수사에 나섰다.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친 피해자와 환경단체의 고발에 대해 경찰이 유죄의견으로 지난 8월 말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최근 해당 기업과 산하 연구소 등에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지난 4년여 동안 530명의 피해신고가 있었고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각각 조사해 제품사용과 건강피해간의 관계를 밝혀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142명이 죽고 388명이 다쳤다. 그런데 이 같은 사상 초유의 환경사건을 일으킨 가습기살균제 업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처벌은 없다.

기껏해야 과장광고 부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선 고발뿐이다. 피해자 조사와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던 정부는 국회의 계속된 압박에 못 이겨 제조업체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돈(구상권)에 해당하는 일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만 병원비와 장례비를 지원했다.

100명의 사망자를 낸 최대 가해제품 옥시싹싹을 만든 옥시의 영국본사 레킷벤키저를 상대로 한 피해소송을 무료로 대리하고 있는 영국 변호사 크리시넨두 무커지(Krishnendu Mukherjee)씨는 지난 9월초 한국을 방문해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사건은 정부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곧바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제조사들이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도 왜 피해대책과 제조사의 책임을 묻지 않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정부기관이 수사의뢰를 했어야 했고, 엄청난 사건인 만큼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섰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사람이 여럿 죽는 대형 살인사건이 발생해 수사를 통해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고도 정작 범인을 4년 동안이나 내버려 둔 꼴이다.

제품사용 허가를 내준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걸까? 최근의 증거자료는 정부가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료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범인 밝히고도 처벌 안 해 


한편 법원은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5년 1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유가족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유가족들은 “국가에서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믿고 사용한 것인데, 이제 와서 국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따졌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유가족들은 항소심을 통해 정부의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법원의 판결과 달리 정부가 알고서도 방기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은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PGH의 배출경로가 에어로졸, 스프레이 형태임을 정부가 확인했음에도 흡입독성 심사를 하지 않은 것은 가습기살균제 집단 치사 사고의 책임이 화학물질 관리에 실패한 정부에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3년 수입업체가 화학물질인 PGH를 수입할 당시 제출한 신청서류에는 PGH 성분이 환경에 배출되는 주요 경로를 ‘제품에 첨가(spray or aerosol 제품 등/항균효과)’로 명시하고 있다. 스프레이나 에어로졸 형태로 배출되기 때문에 흡입독성 시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부가 이를 빠뜨린 것이다 .

유엔인권이사회 소속의 바스쿠트 툰작(Baskut Tuncak) 유엔특별보고관(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Special Rapporteur) 일행이 최근 서울 대학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사망자의 유족 및 환자 등

8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내용을 청취했다.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UN인권이사회, 조사 위해 방한


지난 10월12일 한국을 방문한 UN인권이사회의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대한 유엔특별보고관 바스쿠트 툰작(Baskut Tuncak) 일행은 1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8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사건경위와 피해사례를 청취했다.

바스쿠트 툰작 유엔특별보고관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정부(환경부)와 제조사(옥시레킷벤키저)도 만날 계획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1994년 국내에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처음 판매된 이후 2011년 말 사용이 중단되기까지 무려 18년 동안 연간 최대 800만명의 국민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조사한 바 있다. 현재 신고된 530건의 피해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 9월에도 37살의 남자가 10년을 투병하다 결국 사망했다. 건장한 성인조차 피해갈 수 없을 만큼 위험한 독성물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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