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후로 가뭄, 슈퍼 엘니뇨 등 현실로 나타나
국민과 소통하는 기후변화 대책 마련 시급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유명한 명언도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사과를 못 먹을 수 있다는 슬픈 사실. 지금보다 지구 온도가 2~3℃만 올라가도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는 어렵다. 이처럼 뜨거워지는 지구 탓에 농작물 지도도 변하고 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  문화까지도 기후 영향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기후변화 제일선에서 연구를 수행 중인 (사)한국기후변화학회 권원태 회장을 만나 기후변화시대 우리의 역할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42년만의 최악의 가뭄, 18년만의 슈퍼 엘니뇨 등 어김없이 기후 관련 이슈들이 올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지구 운명을 결정할 가장 특별한 2주일’이라는 파리 기후변화총회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사)한국기후변화학회 권원태 회장

지구를 살리겠다는 뜻을 보태기 위해 세계 시민들이 팻말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거부할 수도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인 기후변화에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때다.

 

앞서 아무도 기후변화에 주목하지 않았던 시절, 오직 기후가 재밌어서 연구를 시작했던 한 여성 과학자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손꼽히는 기후변화 전문가가 됐다.

 

국립기상과학원 연구위원이자 (사)한국기후변화학회(이하 학회)를 이끌고 있는 권원태 회장은 기후변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2015년, 기후변화학회 제4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임기 중 반년을 걸어왔다.

 

학회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보통 잘 만나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학회’라는 인상 깊은 답을 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전문가만 얘기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학계, 연구소, 엔지니어링, 정책 결정자, NGO 등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까다로운 조건 없이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입회가 가능하다. 

 

기후변화는 이제 현실이다
설립된 지 만 7년이 안 되는 시간동안 회원 1300명, 정기학술대회에서는 300편의 논문과 등록인원 500명이 육박하면서 명실공히 기후변화 대표학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권 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기후변화학회가 없다”며 “서로 다른 분야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설립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2022년경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가 나올 때 학회 전문가들이 보고서 작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우리나라 기후변화 대응 정도는 어땠을까. 권 회장은 “처음 기후 연구를 시작했을 때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회상하며 “그러나 연구를 하면 할수록 뭔가 점점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통감했다”고 전했다.

 

2000년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이 만들어지고 기후연구실장을 맡았던 권 회장은 당시 기후변화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곳이 어느 곳에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때부터 기후변화를 연구하며 기후변화를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들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저 자연변동성이겠거니 했던 문제들이 더 이상 기후변화를 부정할 수 없는 근거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영구동토는 없다

▲그 많던 빙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30년에는 북극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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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8년만의 슈퍼 엘니뇨가 발생해 기온과 강수량이 평년보다 높고 폭설도 잦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권 회장은 “1998년 엘니뇨에 의해 지구 평균기온이 굉장히 높았고 올해도 슈퍼 엘니뇨가 발생해 우려된다”며 “1998년과 2015년 이 두 가지만 놓고 비교해봤을 때 둘 다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한 해지만, 문제는 올해 온도가 0.15℃ 더 높다”고 지적했다. 과거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 지구 기온이 굉장히 높았는데 그 다음에 발생한 강력한 엘니뇨 온도가 더 높게 측정됐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 년 내내 항상 얼어 있는 땅 ‘영구동토’도 기후변화로 녹기 시작했다. 영구동토가 있는 곳은 꽝꽝 얼어있어 지반을 제대로 다지기도 힘들었고 다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도로를 놨는데 최근 영구동토가 녹아 땅이 뒤틀리고 도로가 무너지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권 회장은 “영구동토층이 과거 생각처럼 영구가 아니”라며 “지금도 계속 녹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구 전체 온도가 올라가면 공기 중 수증기 양이 많아져 집중호우가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공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많아지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이 수증기가 돼 공기 중에 존재한다. 

 

권 회장은 “집중호우는 태풍과도 연관이 있는데 태풍도 수증기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아직까지 태풍이 강해졌다는 관측 증거는 부족하지만 물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강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구온난화 이대로 계속된다면 2100년 한반도에서 사과는 사라진다”

 

지구온난화 막기엔 아직 역부족

▲46년만의 최악의 가뭄에 이어 18년만의 슈퍼 엘니뇨 등 한반도를

덮친 이상 기후는 이제 현실이 됐다.

또한 “우리나라는 여름철 강우가 늘어나고 있는 편”이라며 “봄, 가을, 겨울 온도가 높아지면서 증발이 많아지고 토양에 있는 수분이 빨리 말라버리면서 가뭄이 발생해 농작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최근 학회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식물 고사에 대한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권 회장은 “기후변화 연구는 10~20년 자료로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며 “자연변동성에 있어 잘못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50~100년 장기 데이터를 가지고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리 기후변화총회가 드디어 막이 올랐다. 이번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는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보이면서 2020년 이후 적용될 신기후체제 협상 타결에 낙관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신기후체제에서는 각국이 2030년까지 자발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이를 분석한 결과 2100년 무렵 지구 기온은 목표를 벗어나 2.7~3.5℃나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 뜨거워지는 지구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권원태 회장은 ‘사람’을 움직여야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권 회장은 “가령 도서 국가들은 1.5℃ 상승도 위험한 수준”이라며 “2℃는 상징적인 숫자고 지금 현재로 봤을 때 2℃ 억제도 지구온난화 추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파리 총회서 합의가 이뤄져도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지구 옥죄는 기후변화, 기회 될까

앞서 한국인 최초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의장으로 선출된 이회성 신임의장은 한국도 기술개발, 인프라 투자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권 회장은 이회성 신임의장의 뜻에 공감하며 “기후변화가 위험하니까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명분이 충분치 않다”며 “기후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개발 등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후변화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향후 국민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권 회장은 “지난해 열린 유엔기후정상회의에 세계적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참석해 기후변화 연설을 했는데 인상 깊었다”며 “국민들이 좋아하거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기후변화를 알린다면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후변화 대응 “깨어 있어라”
최근 2100년이면 해수면 상승으로 부산 지역의 해수욕장이 모두 물에 잠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 심각성을 국민 스스로 각성하도록 적극 알리는 기회 마련도 절실하다.

 

권 회장은 “기후변화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은 삶의 전반적인 생각을 바꾸고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젊은 세대들은 2100년 그 이후까지 살게 될 것”이라며 “나는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확실하고, 이제는 행동해야 하며, 더 늦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막다른 길목에 선 우리의 대응이 향후 지구가 사느냐 혹은 죽느냐를 판가름 할 심판대에 올랐다.

 

맺음말을 통해 권 회장은 “사람을 움직이는 게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꾸준한 메시지를 전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 IPCC 의장단은 IPCC가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 이바지한 권원태 회장에게 공로 인증서를 수여했다. 권원태 회장(왼)과 본지 김익수 편집대표(오)


 

<대담=김익수 편집대표, 사진·정리=박미경 기자>

 

glm26@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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