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한국은 너무 가난해 대책이 없던 나라였다. 더러운 개천 물이 흐르는 위로 판자 집들이 꼬깃꼬깃 자리한 청계천 주변을 담은 흑백사진을 보면 지금의 서울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되던 가난한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지원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됐다.

많은 선진국들과 국제기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발전을 거듭한 우리나라는 1991년 4월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을 정부 출연기관으로 설립했다.

지난 24년여 동안 개발도상국가들과 우호 협력 관계 및 상호 교류를 증진하고 이들 국가의 경제 사회 발전을 지원해왔다. 특히 개도국의 교육, 보건, 의료, 행정제도, 농촌개발, 정보 통신, 산업 에너지, 환경 등 7개 분야는 주요 지원 대상이었다.

우리가 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개도국의 가난과 배고픔을 함께 했고, 지구촌 곳곳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선봉의 역할을 해왔다.

2016년부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로 부상하고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적정기술에 관심이 쏠리면서 그간의 적정기술 노하우가 빛날 기회를 맞고 있다.

우리의 앞선 기술들을 잘 정리하고 현지 여건에 맞춰 어떻게 전개해 갈지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적정기술은 낙후 지역, 소외 계층을 배려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술이다.

인간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환경·경제·사회 등 조건을 고려하고 물질적 원조를 넘어 스스로 발전하도록 돕는다. 휴대용정수기로 잘 알려진 생명 빨대(Life Straw)는 오염된 물을 빨대를 통해 정수하는데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사람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 됐다.

SDGs에서 빈곤퇴치, 불평등 해소, 물과 위생 등을 담으면서 적정기술은 새삼스레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들은 적정기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동체 형성 등 생활환경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개도국 인구의 1/3 이상이 안전한 식수를 보장받지 못하고 매년 250여만명이 정수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빗물을 활용하면 엄청난 양의 물을 절약하고, 복잡한 정수 시설 없이 용수 사용이 가능하다.

빗물에 간단한 살균작용을 거친 식수화, 물을 적게 사용하고 비료로 환원 가능한 신개념화장실도 좋은 제안이다. 4시간 충전 후 10시간 사용가능한 LED 전구, 클린스토브, 맹그로브 숲 조성 같은 다양한 적정기술 사례들도 있다.

신기후체제를 맞아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은 복잡하지만, 반드시 할 일중 한 가지는 그동안 개도국에 시행해왔던 적정기술지원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선진기술을 가진 분야고, 개도국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식량(food), 에너지(energy), 물(water)을 묶어 ICT 기술을 접목하는 ‘통합형 적정기술’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어느 한 나라만이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세계가 손 붙들고 함께 갈 길에 대한민국이 먼저 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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