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모 국립대 교수가 한 방송사 뉴스에 출연해서는 수돗물에 ‘000’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주장했다. 국민들은 불안해했고, 그 파장으로 정수기와 생수가 날개돋인 듯 팔려나갔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거나 끓여서 마시는 경우는 48%, 정수기 이용 43%, 생수 구입 9% 정도로 조사됐다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수돗물 음용율은 매우 저조하다.

최근엔 수도관과 관련해 모 방송사의 일방적인 보도로 또다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수처리 전문가라면 다들 아는 내용인데도 방송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수도관 부식을 보여주면서 수돗물을 도저히 먹어서는 안 될 위험한 물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정수장에서는 잘 처리하는데 수도관이 낡았기 때문에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수도관 부식은 전 세계 어디서나 발생하며, 부식이 안 되는 수도관을 설치하는 것은 경제성을 고려해볼 때 부자나라에서도 불가능하다.

또한 물 때(water scale)는 몇 개월만 물이 통과하면 자연적으로 생기며,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수도본관만 정기적으로 세척하고 있다. 수도관이 녹슬고 구리관이나 오래 전 설치된 납으로 된 관의 경우 구리나 납이 과다하게 녹아 나오면 인체에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수도법에서는 구리나 납이 규제치를 넘을 경우 부식억제제를 주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WHO도 ‘음용수질 가이드라인’에서 필요한 경우 주입하도록 권하고 있고, 대부분의 미국 정수장에서는 부식방지제를 넣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부식방지제로 가장 널리 쓰이는 인산염(phosphate)이 한국에서는 먹지 말아야 할 독극물 같이 과대 포장되어 국민을 불안케 한다. 인(phosphorus)의 하루 섭취량은 700mg 정도이며, 2% 우유 한 컵에 224mg이 들어 있다.

수돗물에는 1리터 당 1mg 정도의 인을 넣는데 우유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인은 칼슘 다음으로 인체에서 가장 풍부한 미네랄로 뼈와 이에 들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부식방지제를 넣지 않기 때문에 부식방지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 수도관이 훨씬 빨리 손상되며,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다.

한국의 수돗물은 수질 면에서 선진국 수준이다. 방송이나 매스컴에서는 수도관이 낡아서 수질이 오염된다고 주장하지만, 수돗물 수질기준은 정수장이 아니라 최종 수요자의 수도꼭지다.

눈으로 보기엔 녹슬었어도 물이 계속 흐르면 수질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녹물이 나와도 녹물이 가신 뒤 수질검사를 해보면 거의 대부분 괜찮다. 수질기준을 초과했더라도 주로 철농도 때문인데 이것은 건강이 아니라 미관상의 문제다.

설상가상 수돗물 수질기준을 위반한 물을 마셨다고 해서 바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수질기준은 성인이 매일 2리터씩 70년 음용했을 때 일백만 명에 한명이 걸려 사망할 확률에 따라 엄격하게 정한다.

그 규제농도도 불확실성 때문에 1,000배가 더 고려된 수치다. 한국의 수도관은 선진국보다 훨씬 새 것이다. 필라델피아 같은 오래된 도시들은 수도관이 설치된 지 얼마나 됐는지 산정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음용률은 80%가 넘는다.

한국에도 상수도 전문가들이 많은데 이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매스컴이 일방적인 시나리오를 쓰면서 국민을 호도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정수장 관련 운영, 설계, 유지보수 기술을 신뢰하고 해외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로잡길 기대한다.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불필요한 규제와 낭비가 발생토록 방치해선 안된다.

환경부는 언론에서 환경부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는 한 어떤 보도에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물 부족 문제를 호소하면서도 수돗물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런 부처를 어떻게 신뢰하란 말인가.

국민을 위한 환경부인지 ‘환경부를 위한 환경부’인지 의문이 들지 않도록 환경부가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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