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죽은 자 때문에 산 자가 설 곳이 없다”, ‘전국이 묘지로 넘쳐나는 나라’, ‘과시 목적의 호화 봉분이 여전한 나라’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좋은 묏자리를 골라 조상을 모시는 것은 ‘효(孝)’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였다.

본래의 유교라면 도교는 미신에 불과하지만 묏자리를 고르는 ‘풍수지리’만 특별대우 한 결과 유교의 효(孝)와 도교의 풍수지리가 만나 조상의 묘를 정성껏 모시지 않으면 불효자가 된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통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 정성스레 ‘죽은 자’를 모신 결과 살아있는 자들이 설 곳이 없어졌다. 산 자들이 차지하는 주거면적은 국토의 3%. 그런데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국토의 1%다. 여기에 매년 여의도 면적만큼 새로운 묘지가 늘고 있다.

 

주거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국토의 3%, 묘지는 1%다. 게다가 매년 여의도의 1.2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묘지가 되고 있다. 아울러 800만개에 달하는 무연고 묘는 처치곤란한 상태다. 



국토 3% 주거면적, 1%는 묘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묘지로 인한 경제·공익적 가치 손실은 연간 1조4635억원에 달한다. 2001년부터 15년 시한부매장제가 도입돼 3차례 연장(최장 60년)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60년간 81조원의 가치 손실이 전망된다.

경제적 가치 계산을 떠나서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역이어서 이용할 수 있는 면적이 제한된 우리나라의 특성상 묘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땅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외국에도 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잔디를 입히는 형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외국도 매장을 하지만 평장이나 석물을 두르는 형태다.

이처럼 봉분을 커다랗게 만드는 이유는 ‘과시’다. 조선시대 왕이나 사대부들이 혈통으로 인한 지배를 정당화하고 세를 과시하기 위해 커다란 봉분을 쌓던 악습을 오늘날까지 따라하는 것이다.

봉분 위에 깔아놓은 잔디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일사량이 중요하다. 따라서 주변에 햇볕을 가리는 나무를 몽땅 베어낸 결과 무덤이 많은 산은 산림 황폐화가 심각하다.

 

800만개 이상의 ‘무연고 묘’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 묘는 더 문제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무연고 묘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한국장례문화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묘지는 약 2100만기 정도이며 이 가운데 800만기가 무연고 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버려진 무연고 묘는 이래저래 골칫덩어리다. 보기에도 안 좋은 흉물스러운 모습인데다 묘지라는 특성상 불쾌감을 불러온다. 자신의 조상도 아닌 생판 남의 묘를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은 별로 없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으며 연간 200만명이 찾는 경주 남산은 수많은 무연고 묘 탓에 ‘공동묘지’가 되고 말았다. 경주국립공원사무소가 경관 복원을 위해 2008년부터 분묘 이장을 권고하고 더 이상의 매장은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비하다. 

연고가 없는 묘지라고 해서 함부로 해체하면 문제가 생긴다. 지난해 한 지자체가 소방서 신축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연고 묘를 해체했는데 그 해 가을 성묘를 위해 찾았던 아들은 아버지의 묘가 없어진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여기에 무연고 묘를 이용한 사기도 기승을 부린다. 지난해 평택 택지개발지구 내 무연고 묘 100여기를 조상 묘라고 속여 3억원이 넘는 분묘이전 보상금을 챙긴 일당이 검찰에 적발된 바 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앞으로 무연고 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다. 지자체별로 공무원을 투입하거나 봉사단체에 의지해 무연고 묘를 청소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장사꾼만 돈을 벌고 유족을 힘들게 하는 장례문화가 과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사꾼만 떼돈 버는 시스템

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1980년대 말부터 인식 변화와 함께 납골당 이용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또한 자연 파괴와 환경훼손이라는 점에서 분묘 못지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돌로 만든 납골시설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자연으로 회귀할 수 없다. 아울러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매장문화와 다를 바 없었다.

 

또한 납골함은 수십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는 친환경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아울러 각종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인간의 시신을 화장하면 유해물질이 배출되며 타고 남은 재에도 유해물질이 검출되기 때문에 함부로 처리하면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장례방식을 택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개인묘지를 법에서 허용하고 있지만 관리가 허술할 뿐만 아니라 무연고 묘 등을 국가가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에서 앞장서 수목장, 산골 등을 활성화시키지 않으니 결국 장사꾼들의 경쟁만 치열해지고 피해는 국민이 입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노인의 절반은 빈곤상태에 빠진 결과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살아서는 ‘표’가 되지만 죽어서는 ‘표’가 안 되기 때문일까? 각종 복지정책에서도 장례 지원은 후순위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례지원금은 현금급여 75만원 및 화장장과 봉안시설, 자연장 등 공설 장사시설의 현물지원이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표준장례비 1071만원 중 장례식장 비용 625만원의 12%에 불과한 75만원으로는 장례를 치르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복지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지자체와 업무협약이 체결된 민간 장례식장의 할인 후원을 받아 겨우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장례식장의 경우 민간시설 비중이 96.3%로 높고 공설 장례식장 수가 적기 때문에 민간업체에서 이용료 할인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산골(散骨)’

자연과 인간에 부담을 주는 전통 장묘 방식인 매장이나 납골당 등의 봉안 대신 환경보호와 비용절감의 이중 효과를 볼 수 있는 자연장 산골(散骨)을 확산하는 ‘환경보호 산골운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골은 장례를 치르면서 할 수 있고 기존 분묘도 산지개발과 매매에 의해 묘지정리가 필요한 경우 훼손된 자연 환경을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으며 보관 및 처리에 따른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산골은 유골 일부를 사리로 만들어 일정기간(49제, 100일, 1년 등)사찰이나 가정에서 모신 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식도 있다.

스위스의 모래 산골 시설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례 방식인 산골은 분묘(평균 1000만원대)에 비해 적은 비용(30만원)이 장점이며 납골당 봉안(100만~500만원)에 비해서도 부담이 적다. 또한 분묘를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성묘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산과 바다로 돌아가는 산골은 광역별로 허가받은 자연장림에서 할 수 있는 반면 나무를 파서 유골을 묻는 수목장의 경우 비용이 천차만별이며 분묘만큼 비싼 경우도 있어 잘 알아보고 선택해야 한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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