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기리며 편지를 낭독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생전에 고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이 담긴 편지를 낭독하면 장례식장은 눈물바다가 된다. 이 때 장례지도사는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께 옷 한 벌 못 해드렸는데, 수의라도 좋은 거 입혀 보내드리면 좋은 곳으로 가실 거다”라며 값비싼 수의를 권한다.

그런데 상조회사와의 계약에는 이미 수의가 포함돼 있다. 유족들의 심리를 자극해 수익을 올리려는 ‘악덕상술’이다. 영업사원들은 3개월간 트레이닝을 통해 유족의 심리를 건드리는 기법을 배운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유족들은 경황이 없다. 게다가 고인에게 생전에 잘 해주지 못한 죄책감 탓에

악덕상술에 놀아나기 일쑤다. 그러나 이렇게 산 장례용품 대부분은 가짜이거나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바가지 요금이다.



거대 상조업체들 ‘횡령’ 덜미

지난 2010년 업계 1위 B 상조회사 대표가 300억원대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B업체는 중앙일간지 1면 광고를 통해 “횡령은 사실이 아니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1위 업체에 이어 2위 업체인 H 상조회사 역시 13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대표가 구속됐고 G 상조회사 역시 직원수당을 허위로 지급하거나 회사자금으로 자신들의 주식을 고가로 사는 등의 수법으로 120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비리가 적발된 업체 대부분은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름까지 바꾼 경우도 있다. 특히 B 상조회사는 2014년 5월 ‘대마수의’로 업체 차별화를 꾀한다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했지만 같은 해 10월 값싼 중국산 수의를 국내산으로 속여 비싸게 판매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아울러 유족에게 납골당 분양을 알선해 20억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까지 드러났다.

2010년 업계 수위를 다투던 상조회사들의 잇따른 비리가 터지면서 정부까지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장례 과정에서의 비리가 상조회사만의 문제일까?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장례문화 전반에 걸쳐 비리가 만연해 있다고 증언한다.

장례절차 모든 과정에 리베이트와 영업이 숨어 있다. 상조회사 한 곳만 잘 선택하면 장례가 모두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절차를 하나 건널 때마다 알게 모르게 리베이트가 건네지고 있다.



영안실에서 무덤까지 ‘리베이트’


사망자가 발생하면 영안실을 시작으로 마지막으로 묘지나 납골당 등에 안치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영업맨들이 끼어들고 거품이 생긴다.

시신이 영안실에 안치되면 상조회사, 납골당 영업맨들, 병원의 직접 영업, 프리로 뛰는 사람들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의 대형병원마다 6~7명씩의 납골당 상담자가 있다”고 밝혔다.

장례식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에도 리베이트가 끼어든다. 지난 2011년 서울남부지검은 변사자 정보를 제공받고 시신을 유치한 대가로 경찰관, 소방관, 상조회사 직원 등에게 2억원 가까운 금품을 제공한 S병원 장례식장 업주를 구속했다.

변사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으면 현장에 장례식장 운구차량을 가장 먼저 보내 변사체 운구 우선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올린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장례식장은 1073개, 빈소는 4900개에 달한다. 반면 하루 평균 사망자는 733명으로, 3일장임을 고려해도 절반 이상이 비어있는 상태다.

1973년 허가제로 시작된 장례식장은 1993년 신고제로 변경됐지만 2000년 자유업으로 전환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빈소를 채우지 못한 일부 장례식장들은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장례용품을 강요하고 리베이트를 받는 등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나서 올해 1월29일부터 개설되는 장례식장은 일정 시설을 갖추도록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리베이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시내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장례차량 영업을 하려던 A씨는 요금을 2배로 올리고 그 차익을 모두

상납하라는 장례식장 측의 요구에 포기했다.



모든 장례용품이 영업 대상

시신 확보에는 장례식장이 ‘을’의 입장이지만 장례용품을 공급하는 업체에게는 절대 ‘갑’이다.

지난해 말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곰팡이가 낀 깻잎 등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판매한 장례식장을 적발했다. 이런 음식을 내놓고도

한 끼에 1만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서울시내 대형병원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차량 대여 영업을 제안했던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다른 업체보다 절반이나 낮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장례식장 측은 ‘가격을 2배로 올려받고 그 가운데 절반은 장례식장에 상납해야 계약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워 포기했다.

차량뿐만이 아니다. 조문객에게 대접하는 음식, 수의, 꽃, 관, 사진 등 모든 장례용품에 거품이 끼어 있다.

심지어 관을 묻은 뒤 구덩이 위에 덮는 나뭇조각에 불과한 ‘횡대’가 25만원, 관을 묶을 때 사용하는 헝겊인 ‘결관포’ 10만원, 망자의 관직이나 성씨 등을 적은 ‘명정’은 8만원이다. 지상파 TV에서 장례용품 가격을 확인한 결과 관과 수의는 무려 200~300%의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음식 값도 바가지다. 장례식장에 뷔페를 차려놓은 것도 아닌데 한 끼 식사에 1만원은 예사다. 게다가 반찬과 안주는 따로 구입해야 하고 외부 음식은 반입불가다. 공정위는 2015년이 돼서야 ‘음료 등 상하지 않는 음식은 반입하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례식장에서 납골당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리베이트는 숨어있다. 일부 상조회사들은 납골당으로부터 막대한 리베이트를 받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유골을 봉안해야 하는 납골당 입장에서 수많은 고객을 거느린 상조회사는 슈퍼 갑이다.

그렇다면 납골당은 당하기만 하느냐? 그렇지 않다. 납골당에 납품되는 봉안함, 꽃, 영정사진 등을 공급하는 업체를 상대로 납골당 역시 ‘갑질’을 한다.

여기에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노래와 춤을 선사하며 기쁨을 주고는 10만원짜리 중국산 수의를 수백만원에 판매한 뒤 종적을 감추는 일명 ‘떳다방’이 끼어 틈새시장을 노린다.

“최고의 장례 서비스를 약속합니다. 단, 더 많은 추가요금을 내고 기꺼이 바가지를 쓰신다면!”



바가지 씌우는게 영업맨 ‘능력’

이렇게 곳곳에 리베이트와 중개업자들이 끼어 가격을 부풀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경황이 없는 유족들은 ‘고인을 위한 성의인데…’라는 상술에 속아 넘어가기 일쑤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삼베수의는 일제강점기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1934년 일제가 ‘의례준칙’을 규정해 비단수의 전통을 금지하고 포목(布木-삼베와 무명)으로 수의를 마련하도록 정했다는 것이다.

거친 삼베는 가난한 조상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옷이었고 동시에 유가족들이 죄인이라는 뜻으로 입었던 수의(囚衣)라는 뜻을 담고 있었는데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 천만원대 수의로 둔갑한 것이다. 오히려 실제 전통장례에서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사용했다고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조회사의 유능한 장례지도사는 유족의 슬픔을 잘 위로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유족에게 얼마나 많은 추가 경비를 지출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고백했다. 장례는 산 자를 위한 것일까, 죽은 자를 위한 것일까?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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