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이세돌 9단에게 알파고(AlphaGo)가 도전장을 냈을 때만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보나마나 한 경기라고 웃어 넘겼다. 이세돌 9단도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첫째 판, 둘째 판을 내주면서 얼굴이 굳어졌고, 셋째 판을 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바둑에 국한 한 대결이었지만, 인간의 시대가 끝나고 컴퓨터의 지배를 받는 시대의 도래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불안해했다.

알파고는 그만큼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다섯 번의 경기 중 네 번째 한 판만 이세돌 9단이 승리했지만, 마음 졸였던 인간들에게는 어둠속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인간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국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막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스스로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한정된 기억과 제한된 시간 안에 판단력을 발휘하는데 분명한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질 수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바둑 외에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영역은 계속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제작돼 국내에서도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던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The paper chase)’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다니는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치열한 공부와 우정, 사랑이라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한 번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공과대학 학생들이 만든 최첨단 컴퓨터와 법대 학생들 간에 사건 판례를 두고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졌다.

기대했던 모든 법대 수재들이 컴퓨터에 완패를 당하면서 드디어 법대 학장인 킹스필드 교수에게까지 도전장이 전해졌고,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문제가 주어졌다.

그러나 자신만만했던 공대생들의 예상과 달리 컴퓨터는 예전에 판례가 없었고 사람간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로 얽힌 사건에 대해 ‘포기’를 선언한 반면, 학장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성찰과 배려를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해 승리를 거뒀다. 당시 정확한 시청율은 알 길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준 드라마였다.

기계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잘 지킬 필요가 있다. 배려와 존중, 사랑, 나눔 같은 것들 말이다.

알파고는 한편, 무섭게 성장하는 인공지능(AI)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면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입시위주에 빠져 소프트웨어 교육에 얼마나 소홀했든가 경종을 울렸다. 우리는 이미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새 시장을 창출할 무궁한 잠재력과 대박 가능성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금융, 자동차, 항공, 영화,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는 손을 뻗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의 기반기술이 됐다.

이번에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한 그런 건전한 자극을 환경 분야에서 볼 수는 없을까. ‘괜찮다’만 믿으며 덥혀져가는 솥 안 개구리로 남겨져버린 우리 현실이 안타까워 해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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