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날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자신이 죽고 난 후 뒷일은 가족들이 맞는다. 부모, 형제, 배우자를 잃고 경험하게 되는 슬픔과 스트레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고인과 살아생전 못 다했던 관계의 아쉬움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묘 자리를 쓰려하고, 장묘와 관련된 업체들에게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돈을 더 쓴다고, 비싼 관을 사고, 수의를 입히고, 호화 봉분을 만든다고 고인이 다시 살아 돌아올 일은 없지만 일종의 자기 만족, 보상 행위라 하겠다. 그렇게 오랜 세월 무리하며 ‘죽은 자’를 모신 결과 살아있는 자들의 설 곳이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

산 자들의 주거면적은 국토의 3%인 반면,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국토의 1%에 달하고, 매년 여의도 면적만큼 새로운 묘지가 늘고 있다. 묘지의 경제·공익적 가치 손실은 연간 1조4635억원에 달한다.

2001년부터 15년 시한부매장제가 도입돼 3차례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60년간 81조원의 가치 손실이 전망된다. 경제적 계산을 떠나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역이어서 이용가능 면적이 제한된 우리나라의 특성상 묘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땅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외국에도 묘지가 있고, 매장도 하지만 평장이나 석물을 두르는 형태고,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잔디를 입히는 형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봉분을 대형화하는 이유는 ‘과시’다.

조선시대 왕과 사대부들이 지배를 정당화하고 세를 과시하기 위해 커다란 봉분을 쌓던 악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봉분 위에 깔아놓은 잔디가 잘 자라기 위해 충분한 일사량이 필요하다보니 주변 나무를 몽땅 베어 산림 황폐화도 심각하다.

묘지를 만들고 찾지 않는 무연고 묘도 큰 문제다. 약 2100만기의 전국 묘 중 대략 800만기가 무연고 묘로 추정된다. 방치된 무연고 묘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흉물스런 외관뿐만 아니라 사기와 갈등의 대상으로 확대되며 사회문제까지 만들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무연고 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여 주기 식 체면문화가 여전해 뚜렷한 대책은 보이질 않는다. 1980년대 말부터 묘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납골당 이용도 증가하고 있지만, 자연 파괴와 환경훼손이라는 점에서 분묘 못지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장례방식은 개인 선택의 문제지만, 묘지의 개인관리가 허술하고, 무연고 묘 등을 국가가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고, 노인 빈곤상태가 시작됐지만 복지정책에서도 장례 지원은 후순위다.

지속가능한 장묘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매장이나 납골당 대신 환경보호와 비용절감의 이중 효과를 볼 수 있는 자연장 산골(散骨)을 확산시켜야 한다. 관을 세워서 넣는 직립식 매장도 고려해보자.

떠난 이를 추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살아계실 때 더 잘 모시면서 좋은 관계를 맺고, 돌아가시면 미래세대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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