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을 떠올리면 보통은 꿀을 연상한다. 꿀은 꿀벌이 꽃의 밀선에서 빨아내어 축적한 감미료다. 고형분 대부분은 당분으로 과당과 포도당으로 되어 있다.

이 당분은 꽃 속 슈크로스가 꿀벌의 입에서 나오는 효소의 작용으로 변화된 단당류라 흡수가 쉽고 칼로리원으로서 효과가 빠르고 영양가가 높다.

예로부터 벌꿀은 담해, 감기, 위장병, 변비, 빈혈증, 폐병, 심장병, 신경쇠약 등의 증상에 약용으로 귀중하게 사용되어 왔다. 최근엔 벌꿀 중 함유된 꽃가루의 영양가치도 인정받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벌이 있어야 가능하다.

벌은 곤충 가운데서 가장 큰 무리로서 세계에 10만 종 이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의 몸 구조는 다른 곤충류에 비해 적극적으로 활발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고, 먹이 선택이나 생활양식이 매우 다양하다.

벌은 식물의 조직을 먹는 것에서 시작해 그 식물을 먹는 다른 곤충, 또 그 곤충을 먹는 더 상위 단계의 곤충 또는 거미의 기생자와 사냥꾼을 거쳐 다시 식물의 미량생산물인 꽃가루와 꽃 꿀만을 먹는 과정을 거쳤다. 말벌과 같이 때로 인간을 공격해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벌은 인간에게 공헌해 왔다.

북아메리카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벌이 유용식물의 꽃가루를 전달해서 발생하는 편익은 해충 전체가 인간에게 직간접으로 주는 유해 비용을 훨씬 초과한다.

이런 특성에 벌이 해충의 증식을 제어하는 기생벌이나 사냥벌로서 기여하는 역할을 더하면 그 이익은 비용으로 헤아릴 수 없는 정도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벌들이 그러나, 과도한 농약사용, 서식처 파괴,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점점 그 수가 줄고 있어 문제다. 어떤 첨단과학이나 기술로도 벌들이 해온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연구발표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봉벌들이 소음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민원이 늘고 있다. 강원도 모 지역 농업용 저수지 둑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발파소음과 진동으로 인근에서 동면 중이던 양봉벌이 폐사했다며 피해 배상을 신청한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양봉시설 인근 공사장에서 약 10개월 동안 발파공정중 발생한 소음 진동으로 인해 벌이 죽고, 채취한 꿀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공사장 발파에 따른 소음·진동, 진동속도 등이 가축피해 인과관계 검토기준을 초과했다고 확인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날개 진동의 강약으로 의사소통하는 꿀벌의 활동을 방해해 벌꿀의 생산과 산란 등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종합 고려했다.

분쟁위는 벌의 폐사와 벌꿀 생산량 감소피해에 대한 개연성을 인정해 배상을 결정했다. 그러나 벌로 인한 측정 불가능한 수준의 각종 편익을 고려한다면 사람의 상식선에서 결정하는 배상액은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사후약방문식 보상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통한 인류복지증진이라는 차원에서 벌 생태계 보전을 위한 세심한 대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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