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가격과 편리한 기능 때문에 염산은 화장실 청소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농도 10% 미만의 염산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의약외품’으로 구분돼 별도의 인증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가격도 농도 10%미만 염산 500㎖짜리는 3000원 수준이다. 그런데 이 염산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값싸고 편리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순도 10% 정도의 염산이나 황산은 철을 녹일 수 있고, 피부에 직접 닿으면 3도의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허술한 관리로 인해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방비상태로 우리 사회에 노출돼있다는 의미다.

며칠 전 수사에 불만을 품은 한 여성이 경찰관들에게 유독물질 황산을 뿌려 4명이 화상을 입는 초유의 경찰서 황산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한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황산을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 하반기에 발생했던 4건의 염산테러 역시 인터넷이나 판매점에서 별 어려움 없이 구매한 제품에 의한 것이었다. 충남 보령에서는 내연녀 변심을 이유로 염산을 뿌렸고, 경기도 광주에서 유사한 이유로 염산이 든 우유팩을 던졌고, 서울 용산에서는 여자친구에게, 대구에서는 한의사에게 각각 염산을 뿌려 상해를 입혔다.

작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체계적 관리를 목적으로 유해화학물질 취급 기준을 강화하는 법률이다.

염산, 황산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을 판매하는 화공약품점은 구입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성명, 주소, 전화번호, 구입물질의 종류·양 등을 기록해 3년간 보존토록 돼있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내면 해당 사업장 매출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환경부가 작년 봄 화관법 시행 이후 처음 황산, 클로로포름 등 유해화학물질 판매 업소 134곳을 단속한 결과 25곳이 법을 위반했다.

유해화학물질 오프라인 판매업소의 경우 89곳 중 13곳이 영업변경허가 미이행, 판매관리대장 미작성 등을 위반했다. 온라인 판매업소의 경우 45곳 중 12곳이 무허가 판매, 사고대비물질 인터넷 실명인증체계 미구축 등을 위반했다.

세월호 같은 국민적 아픔을 겪고도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는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보인다. 눈앞에서 뭐가 터지고, 몇사람 쓰러지기 전까지는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해화학물질을 테러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돼지만, 당장의 유익에 치중한 안일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각종 사건 사고의 발생가능성을 외면하는 일도 더 이상 반복돼선 안된다.

경제가 어렵다고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순 없는 노릇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말로만 하는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사업전반활동에서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자발적으로 밝혀 개선해야 한다.

유해물질유출과 관련해 관계자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국민모두의 안전을 위해 다소 불편해도 합의한 약속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시민정신의 확산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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