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외면당해 발을 구르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하나로 뭉쳐 집단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2개 제조판매업체와 더불어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도 대상이다.

여의도 옥시한국 본사 앞에서는 80여 시민단체 회원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불매운동을 계속했다. 검찰은 대형마트사와 기타 제조사들에게도 제조 및 배포의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도 손상, 호흡 곤란ㆍ기침, 급속한 폐손상(섬유화) 등의 폐손상증후군을 일으켜 영유아, 아동, 임신부, 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이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망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부터였다.

정부조사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530명중 76%인 403명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을 사용했다. 사망자 142명중 100명이 옥시싹싹 제품을 사용했다.

영국의 종합생활용품 업체이며 세제, 방향제, 위생용품 분야의 세계적 업체인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가 2001년 인수해 만든 옥시레킷벤키저에 의해 2011년까지 판매돼 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영국 본사까지 수차례 날아가 잘못을 인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레킷벤키저는 여전히 태연했다. ‘진정성있는 사과와 책임인정’에 눈과 귀를 가렸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환경재난을 겪으며 ‘환경과 안전, 보건’에 앞서온 나라다. 다양한 분야에서 영국표준(BSI)은 세계표준을 선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영국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국민의 생명이 훼손되는 엄청난 사고가 터졌는데도 그동안 대책 마련과 수습에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정부는 형식적인 피해신고절차를 만들어 발표하고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접수했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정부가 판매 허가한 제품을 사용하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사고를 조속히 편리한 방식으로 덮어버리려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러고도 신뢰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진 말도 안되는 화학물질 피해사고에 대해 정부는 방관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눈치 보는 모습이 계속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언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의문에 대해 정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조사와 발표를 약속하고 투명하게 조사하고, 명확하게 발표하고, 대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환경부가 변명이나 하고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살균제를 쓰는 생활용품 전반으로 확산돼 섬유유연제 등의 유해성분 논란이 증폭되면서 성분확인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고 공신력을 올리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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