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대륙·해양 세력의 격전지이자 타협의 대상
분단은 세력의 절충안…냉철한 판단과 열정 요구될 때

 

한반도는 오랫동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격전지였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모든 전쟁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대결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과 일본이 각각의 세력을 대변하는 국가였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동쪽 끝에 불과했던 과거에는 중국이 대변하는 대륙세력이 압도적이었다. 첫 번째 중일전쟁은 신라가 끌어들인 당과, 백제가 끌어들인 왜가 당시 백제의 수도 부여 부근에서 벌인 백강 전투였고, 여기서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왜는 나당 연합군에 패퇴했다. 그 후 한반도 지배를 놓고 당과 격돌한 신라는 대동강 이북을 당에 내주는 대가를 치르고 그 이남을 통일했다. 그 후 고려 말, 대륙과 한반도를 평정한 몽골은 고려를 앞세워 일본 정복을 시도했으나, 가미카제로 불리는 태풍에 꿈을 접고 만다. 두 번째 중일전쟁이 무산된 것이다.

 

▲이수현 변호사

유럽제국이 아시아에 진출하고 태평양 항로가 개발된 후에는, 동아시아의 변방 일본이 동아시아의 선두에 서는 극적인 변화가 초래됐다.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은 정명가도의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백강 전투에서의 처절한 패배로부터 천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승승장구 북진하던 일본군이 평양성을 함락할 때 명은 참전했고, 또다시 중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일진일퇴 속에 일본은 조선반도를 명과 일본이 분할지배하는 안을 제안했으나, 명은 거절했고 결국 일본은 조선에서 패퇴했다. 명은 그 대가로 왕조가 멸망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러시아의 동진과 미국의 태평양 진출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대륙·해양 세력의 대결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게 된다. 대륙세력으로 러시아가, 해양세력으로 미국이 가세한 것이다. 중·러가 한반도에서의 대륙세력을 대변하고 미·일이 해양세력을 대변하는 동시에 대륙세력 내에서의 중·러의 대결, 해양세력 내에서의 미·일의 대결이 병존하는 이중구조가 된 것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대륙세력 영향력하에 있던 한반도를 해방하는 동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시작을 의미했다. 러일전쟁 직전엔 러시아가 일본에 39도선으로 한반도를 분할지배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에는 영일 동맹과 카쓰라 태프트 밀약에 의해 해양세력인 영국, 미국이 조선에서의 일본 지배권을 묵인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해양세력의 독주가 이뤄진 것이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을 격퇴하고 한반도에서 일본은 물러가게 된다.

 

2차대전의 막바지에 일본에 선전포고한 소련은 만주를 가로질러 북한지역을 점령하게 되고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에 승리한 미국이 남한지역을 점령하게 됨에 따라, 수천년 이어져 온 한반도에서의 대륙·해양세력의 대립은 남북한 각 지역에서 소군정과 미군정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남북한 각각의 정부 수립으로 귀결된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미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하고 유엔군의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에 의해 중국이 참전하게 됨에 따라, 또 한 번의 한반도에서의 대륙·해양세력 간의 전쟁이 발생한다. 그 결과는 기존의 38선과 다를 바 없는 절충으로서의 휴전선이다. 그 휴전으로부터 63년이 지났고, 분단은 고착화되고 있다.

 

한반도는 거대한 양대 세력의 격전지였고 타협의 대상이었다. 현재의 분단은 양대 세력의 절충안이고, 현재 양대 세력의 종주국은 미국과 중국이다. 이 절충안으로서의 분단의 타파가 있어야 한반도에서의 진정한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이 완성된다. 국제정세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통일국가에 대한 불굴의 열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외부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