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통합을 근간으로 동방통합의 동시 추진
한·미 관계 더불어 중국, 러시아와 소통의 지혜 절실

 

“서독은 서방세계의 동쪽 끝이 됐고 동독은 동방세계의 서쪽 끝이 됐다. 독일의 분단은 유럽의 분단이 종결되지 않는 한 끝이 날 수가 없다”(리햐르트 폰 바이체커 서독대통령, 1985) 이 글이 말해주듯이 서독은 전쟁의 패배로 인해 미・영・불・소 이른바 전승4국에 의해 분단된 그 순간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통일이 서방과 동방, 즉 유럽의 통합,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소련 간의 화합과 동의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고려에서 ‘통일’ 보다 ‘통합’에 목소리를 높였다.

 

▲통일연구원 손기웅 선임연구위원

통합정책은 분단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3단계로 구분돼 추진됐다. 먼저 미・소가 대결했던 냉전의 시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철저한 ‘서방통합정책’을 통해 국가를 건국하고 군사적 재무장과 NATO 가입, ‘마샬플랜’에 의한 지원을 바탕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다음으로 미・소가 화해했던 긴장완화의 시기에는 ‘신동방정책’을 기조로 하는 ‘동방통합정책’을 추진해 소련, 폴란드와 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동구권과의 관계 개선은 물론 동구의 거대한 시장을 획득했으며, 미・소의 양해아래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또한 동서 간 해빙의 분위기 속에서 1975년 ‘헬싱키최종의정서’를 통해 출범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촉매 역할을 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시작된 신냉전의 시기에는 다시 서방통합을 중점으로 하되 CSCE를 통해 동구권과 간접적 협력을 지속하는 ‘균형정책’을 추진했다. CSCE를 무대로 유럽에서의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 및 동구권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결국 서독은 국제정세의 가파른 변화 속에서 현실적,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통합정책과 현실적 실익정책 ‘Realpolitik’을 통해 동·서방 양 진영에 서독이 평화적으로 함께 공동 번영할 수 있는 훌륭한 동반자란 인식을 심어주면서, 국력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통일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통일의 가능성이 도래한 순간에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토대로 통일을 무리 없이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이 통일 이전이나 통일과정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추진해 온 원칙은 서구와 손을 잡아야만 서독사회를 근본적으로 민주화된 정치문화를 가진 새로운 사회로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를 디딤돌로 삼아 동구사회를 개혁하고 민주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독은 정치·안보·경제·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서구와의 연대라는 필수사항을 다져가는 가운데 소련 및 동구권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충분조건을 채워나갔다. 서독이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방세계의 확고한 일원이 됐기 때문에 통일 환경이 조성된 그 순간에 미국의 지지를 획득함은 물론, 그것을 바탕으로 소련과 다른 서방연합국들의 동의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도발에 대응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국내 배치를 두고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국가성장과 통일을 위한 우리의 통합정책, 한·미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대중 및 대러 접근에 대한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비록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이 펼쳤던 국가전략, 통합정책을 중심으로 한 현실적 실익정책을 면밀히 복기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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