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밀집 군사력, 복잡한 관계 등 국제적 민감 사안
남한이 남북관계 주도할 수 있는 여건으로 만들어야

 

2차 대전 당시 미 대통령 루스벨트는 타 대륙의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립주의에 대항해 국민·정치권을 설득한 끝에 독일·일본에 대항한 전쟁에 참전했다. 루스벨트는 유럽·아시아에서 전제국가가 패권을 잡으면 미국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미국은 유럽·태평양 두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두 전선을 동시에 승리로 이끄는 것은 그 이전이나 이후나 희귀한 일이다. 그만큼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은 압도적이었다. 종전 후 자연스럽게 태평양과 대서양은 미국의 내해가 됐다. 마치 지중해가 로마제국의 내해였던 것처럼. 미국은 대서양에서는 나토를 통해 소련을 억제했고 태평양에서는 미일 동맹, 한미 동맹 등을 통해 소련과 중공을 억제했다.

 

중국은 명대 초기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환관 정화를 앞세워 콜럼버스보다 70년 앞선 시기에 대선단을 꾸려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인도양 항로를 제패했다. 그 후 명은 해금(海禁)정책으로 전환했고 이는 청 말까지 이어졌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수백만에 불과한 인구에도 불구하고 해군과 상선을 동원해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바다는 천연의 고속도로로 무역의 루트이며 본국의 영토를 초월해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영국 해군은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을 통해 대륙국가 청에 치욕을 안겨줬다.


중국은 일본에 비해 영토가 25배가 넘음에도 200해리를 기준으로 한 배타적 경제수역 기준으로는 바다의 면적이 일본보다 훨씬 작다.

 

중국은 삼면이 육지인 데다 바다로 면해 있는 동해안의 경우 배타적 경제수역이 한국, 북한,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으로 포위돼 있다. 이들 나라 중 군사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는 북한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과 직·간접적인 군사적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웅비는 그에 상응하는 원양으로의 진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서태평양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해군의 기득권과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야기하고 있다. 최근 헤이그 재판소의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 분쟁에서 필리핀이 이긴 것은 중국의 원양진출이 일단 좌절됐음을 의미한다.


황해는 중국의 핵심부인 베이징·텐진과 북한의 핵심부인 평양·남포, 남한의 핵심부인 서울·인천이 만나는 전략적 이해의 충돌지다. 서해에서 서해교전,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등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황해에 존재하는 외국의 전략적 무기에 대해 중국은 급소를 겨냥당하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실제로 천안함 폭침 직후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 서해에 진입해 한미합동훈련을 했을 때 중국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한·미가 경기나 충청이 아닌 영남에 사드를 배치한다 해도 이러한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중국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거론했다. 소련이 미국 동부를 겨냥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한 것과 이번 사드 배치를 동일한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시 쿠바 위기는 미·소 간 핵전쟁 일촉즉발의 위기로까지 갔다. 1978년 중국의 등소평은 베트남이 소련 해군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항구를 이용하게 하자 베트남과 전쟁을 일으켜 베트남을 응징하기도 했다.


사드 배치는 동북아의 밀집한 군사력, 복잡한 국제관계 등으로 인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한 손익계산이 정밀히 계산돼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이 계산의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남한이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여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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