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금수강산이라던 때도 물은 귀했다. 굳이 ‘물은 생명’이라 하지 않았어도 소중한 대상이었다. 값을 내진 않았지만 품을 팔아야 물을 얻었다.

그러나 물을 공짜로 여기며 낭비하고 비정상적인 물관리가 이어진 불과 수십년 사이 우리 사회는 ‘물 인식 왜곡’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물 부존자원의 가용성을 넘는 소비수준을 보이고 있다. 절약해도 아쉬울 판에 물 값이 싸다보니 펑펑 써대고 있다. 그동안 하천시설, 물 저류 및 공급 시설, 하수도 처리시설 등 물 공급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가 크게 확충됐지만, 이제는 관리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인프라는 공급한계에 도달해 이미 수요를 초과했고, 유지관리가 임박했지만 예산은 보이지 않는다. 2035년에는 물 인프라 노후화 비율이 72%를 넘어 재정적 부담과 안전과 서비스 질 하락에 따른 불편 등 사회적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연간 수돗물 누수량은 6억9000만톤으로 약6059억원에 달한다. 물 산업은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국가가 이를 다 충당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여전히 물 값은 세계 최저수준이다.

작년 12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 파리협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크지만 그렇다고 당장 기후변화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약속대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향후 100년간 모든 분야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기후변화 ‘적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분야는 물이다. 기후변화로 물 서비스가 위협을 받고 있고 어디까지 그 영향이 미칠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작년 충남 서부지역에서 일어난 대가뭄의 재현 가능성은 상존하며, 다른 지역도 예외일 수 없다.

이렇듯 심각한 물 문제를 두고도 물 관련 담당자 입에서 조차 우리 사회가 우선 투자할 대상은 '통신, 에너지, 도로와 철도'라는 답을 듣는다. 물이 아니었다. 물 값이 너무 싸서 물이 귀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 결과다.

많은 국민들이 한잔 평균 2000~3000원 하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하루 한 잔 이상 사 마시는데 굳이 물 값 몇 백원을 올릴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에서 일까.

지금까지 물 값은 서비스의 전과정을 제대로 계상하지 못한 결과 왜곡된 부분이 있다. 수자원 개발과 공급 서비스, 유지 관리까지에 소요되는 비용이 물 값 산정시 포함돼야 한다.

대통령은 물 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라지만,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물 가격 구조를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산업으로 육성될 수는 없다. 모든 물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책정하고 적용해야 한다.

공짜로 퍼주는 물도 없애야 한다. 물 서비스의 올바른 가치를 인정하도록 관련 정보의 소통도 병행해야 한다.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물 관리를 위한 빗물요금제 도입 시 톤당 1센트 부과하던 요금을 지금은 35달러까지 부과하고 있다. 요금부과의 타당성을 입증할 데이터를 제시하자 시민들은 수긍하고 협조했다.

문제는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하겠다는 진정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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